나는 그것 [창조된 만물 전체]이 존속되고 있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어찌나 작고 미약(微弱)한 것인지 금방이라도 없어져 버리고(sink into nothingness) 말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ca.1342 – ca.1416),
《하나님 사랑의 계시 Showings》, LT, ch. 5.
'계시' 가운데 창조된 만물 전체를 일별하게 된 줄리안은 놀랐다. 그 광대한 존재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미소(微小)한 것이 여태도 존재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금방이라도 '무'(nothingness)로 돌아가버릴 것만 같은 그 자그마한 것이 지금도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그 사랑의 능력 덕분이었다.
"만물이 존속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아니, 그것이 애초에(in the beginning) 존재하게 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만물을 '무(無)로부터' (out of nothing) 창조하셨다(creatio ex nihilo)--당신 '사랑의 능력'으로 창조해내셨다.
그렇기에 우리는 믿는다. 지금 당장이라도 무(無)로 돌아가버릴 것 같은 내 존재, 허무(虛無) 속으로 떨어져버릴 것 같은 내 실존을, 나를, 너를, 우리를, 우리에게 주신 이 세상을, 사랑이신 주님께서 당신 사랑의 전능으로 지켜주고 계시다는 것을.
그래서인가 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인생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은 동시에 우리가 그것을 너무도 '부서지기 쉬운'fragile 것으로 느끼는 순간이기도 한 것이...
그런 '순간'은 영원과 시간이 교차하는 순간인가 보다.
지금 이 순간도 '창조'의 일을 하고 계시는--'사랑'의 일을 하고 계시는--하나님을 흘낏 보게 되는 순간인가 보다. / 산처럼
al shal be wel,
and al shal be wel,
and al manner of thyng shal be wele.
- The Shewings, LT, 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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