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회가 초대 교회의 희생 정신을 되찾지 못한다면, 교회는 세상에서 그가 지녀왔던 권위를 잃어버릴 것이며,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충성도 또한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서는 아무런 의미 없는 하찮은 사교 클럽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버밍엄 감옥에서 보내는 편지(Letter from Birmingham Jail)” The Atlantic Monthly (August 1963), The Negro is Your Brother 212, no. 2, 78-88.
이번 성탄절을 지나면서 우연히 킹 목사님이 쓰신 "버밍엄 감옥에서 보내는 편지(A Letter from Birmingham Jail)"를 접하게 되었다. 그분의 글을 읽고 보니, 악의 속박에서 우리를 건져내시려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속에 임하신, 주님의 성탄의 깊은 뜻을 한층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1월 15일이 킹 목사님의 생일이라는 사실도 새삼 기억이 났다. 그래서 목사로서의 그분의 삶을 상기하면서 이 편지글을 꼼꼼히 곱씹어 가며 거듭 읽어 보게 되었다. 이 편지는 킹목사님이 1963년에 미국 남부의 알라바마 주의 버밍엄 시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 철폐와 투표권 보장을 위해 벌이다 체포된 후, 그 도시의 감옥에서 쓴 것이라고 한다. 이 편지는 당시 8명의 백인 목사들이 킹 목사님의 비폭력 운동을 "시의 적절치 못하고, 어리석은" 것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한 대답으로 쓴 공개 서신이었다.
크게 크게 내 마음을 울리는 킹 목사님의 여러 말씀 중에서도 이 글 머리에 인용된 구절이 가장 날카롭게 가슴을 두드린다. 킹 목사님은 그의 편지의 말미에서, 정의를 요구하는 흑인 인권 운동에 미온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당시의 미국 남부의 교회들, 정의를 요구하는 킹 목사님의 시민 불복종 운동을 "복음과는 관계 없는 사회적 이슈들"이라고 평가절하하려는 그 교회의 지도자들을 향해 이러한 예언자적 선포를 했다. 지금 우리 교회가 초대 교회의 희생 정신을 되찾지 못한다면, 교회는 오늘날에는 별 의미가 없는 사교 클럽 같은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이 말은 오늘 우리들도 귀담아 들어야 할 하나님의 경고로 들린다.
오늘의 교회들이 회복해야 할 “초대교회의 희생 정신”이란 어떤 것인가? 킹 목사님은 이 편지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적시한다. 그것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이라고 인정받던” 신앙인의 모습이다. 킹 목사님은 이런 초대 교인들에게는 "한 사회의 관행과 관습을 바꾸어 내는 변화의 능력"이 있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이런 희생적 신앙은] 가는 곳마다 그곳의 권력 구조를 흔들어 놓았으므로, 초대 신앙인들은 “사회의 안정을 깨뜨리는 사람들”이라고, “외부로부터 온 낯선 선동자들”이라고 고발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서 행동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사람의 말에 복종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희생적 신앙 실천은 결국 유아 살해의 문화에 종지부를 찍었고, 굶주린 맹수들 앞에 그들을 던졌던 잔혹한 문화도 종언을 고하도록 하였다.
이런 킹 목사님의 말들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오늘의 시대 상황에서 신앙 실천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모색하는 중에 전광석화같이 번뜩이는 통찰을 선물한다. / 남기정.
'한 줄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마다 새로운 나 (토마스 머튼) (2) | 2014.01.19 |
---|---|
겸손과 새로움 (아빌라의 테레사) (0) | 2014.01.09 |
새해의 첫 소리 (토마스 머튼) (0) | 2013.12.30 |
하늘을 향해, 또 땅을 향해 (조지 허버트) (0) | 2013.12.26 |
왕으로 오신 예수 (안토니의 생애) (0) | 2013.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