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느 귀용(Jeanne Guyon: 1647-1717), 《아가서 주석》(도서출판 순전한 나드, 2006), 저자 서문에서.
어느 날엔가 기도 하는 가운데 나의 마음을 찌르는 질문이 주어졌다. "난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가? 난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하는가?" 물론 끊임없이 말씀을 보고, 기도도 하며, 모든 예배를 주관하고 설교하고, 성전을 지키는 자로서 살아가지만 정말 하나님과 친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나님 중심적인, 하나님과 그저 가까이 하기 위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내 욕망의 추구로서의 예배와 기도, 의무를 완수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염려하는 두려움으로서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속에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사라져버린 억지로 드리는 예배, 억지로 따르는 삶, 마지 못해 행하는 그런 경건생 활을 드리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자괴감과 회의가 나에게 닥쳐 왔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설램이, 갈망이, 목마름이 사라지고, 의무만이, 책임만이 남아버린 것이다!
그런 화두를 가지고 고민하며 기도하다가 읽게 된 것이 잔느 귀용이 쓴 《아가서 주석》이다. 이전까지의 아가서는 "노래 중의 노래"라는 제목에 담긴 찬사에도 불구하고 에로틱한 표현 등으로 인해 교회 내에서 잘 읽히거나 가르쳐지지 않아왔다. 비록 오리겐이나 버나드, 밀턴 등에 의해서 아가서의 주석이 저술되기도 했지만, 이들은 솔로몬의 언어를 극히 비유적인 의미로 바꾸어 그 문자적인 의미들을 제거하려 했다. 이 이면에는 남녀 간의 사랑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죄로 여기고 타부시화 시키는 가치관이 깔려있다.
마담 귀용은 여러 기존의 비유적인 해석들을 넘어서 개인적인 것으로, 즉 믿는 자와 주님 사이의 사랑 이야기로서 아가서를 해석한다. 그녀의 글을 통해 수많은 방황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를 표방하는 그녀의 글은 가톨릭 당국으로부터 이교도라 정죄 당하였고, 귀용은 여러 차례 감옥에 수감 되었다. 감옥 속에서나 고통 중에서 그녀는 점점 더 깊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추구하며 깊은 영성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녀는 하나님과의,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영적 연합을 의문시하는 사람들에게 단호히 말한다.
"우리의 영은 깊이 하나님과 연합되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은 그것을 위해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설레이는 가슴으로 그 분과 함께 연애하고 싶다. 그렇게 첫 사랑을 회복하고, 아니 날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고 싶다.
/ 소리벼리 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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