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한 춤 (나니아 영성 이야기 6)

영성 생활/수필 한 조각 2020. 7. 31. 11:26

장엄한 춤

(나니아 영성 이야기 6)

 

“잠시 후, 루시와 작은 파우누스는 손을 맞잡고 기쁨에 겨워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마녀의 집 안뜰에서 석상(石像)이 되어있던 툼누스를 아슬란이 숨을 불어넣어 되살려내자 벌어진 장면입니다. 옷장을 통해 루시가 나니아에 오게 되었을 때 처음 만난 인물(?)이 바로 툼누스였지요. 툼누스는 파우누스(Faunus), 즉 목신(牧神)이었습니다. 신화적 의미에서 자연만물을 뜻하는 그 신을 딱딱한 돌로 만들어놓은 건 하얀 마녀였습니다. “모든 나무는 님프이고, 모든 행성은 신(神)"이었던 코스모스, 나니아를 만물이 얼어붙은 동토(凍土), 모든 것이 자기 색을 잃고 백설에 뒤덮여 있는 설국(雪國), "크리스마스도 없이 영원히 겨울만 계속되는" 나라로 만들어버린 하얀 마녀 말입니다.


아슬란은 그 마녀가 지배하는 겨울 왕국에 봄을 몰고 옵니다. 마녀와 싸워 이겨 봄을 가져옵니다. 그 싸움을 이기기 위해 아슬란은 돌탁자 위에서 자기 목숨을 내놓았지요. 그렇습니다. 봄이 ‘자연히’ 오는 법은 없습니다. 봄은 “피 흘리기까지”(히 12:4) 싸워 이긴 누구의 ‘은혜로’ 오는 것입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이 오고 /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 … /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 너, 먼데서 이기고 온 사람아 (이성부, '봄' 중에서)

 

나니아에 다시 찾아온 봄은 “먼데서 이기고 온” 봄이었습니다. 나니아의 주(主)인 존재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오는 봄이었습니다. 그 봄은 돌처럼 굳어 죽어있던 나니아의 만물과 만인을 살려냅니다.

 

“꼭 박물관 같아.”

 

살아움직이던 동물들이 석상이 되어 모여있는 마녀의 집 안뜰을 보며 루시가 한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아슬란의 숨이 그들 안으로 불어넣어지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사방에서 석상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안뜰은 이제 더 이상 박물관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곳은 마치 활기 찬 동물원 같았다.”

 

박물관 같았던 곳이 동물원 같은 곳이 된 것. 그것이 마녀의 집 안뜰에서 벌어진 구원 사건이었습니다. 자기 색깔과 호흡을 잃고 화석처럼 굳어있던 모든 것들이 다시 살아숨쉬고 움직이게 되는 것, “깨어나고, 사랑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존재들이 되는 것, 그것이 루이스가 「나니아 연대기」에서 그리는 구원이었습니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그래서, 다시 춤추게 된다는 것입니다. 석상들은 춤추지 못하지요. 하지만 아슬란의 숨을 받아 살아숨쉬게 된 동물들은 “아슬란의 꽁무니를 쫓아 뛰어나디며 빙글빙글 에워싸고 춤을 추”어 댔습니다. 죽음을 삼키어버리는 이 부활 세레모니를 「나니아 연대기」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죽은 듯이 새하얗던 안뜰은 온통 눈부신 빛깔로 가득했다...죽음 같은 정적은 사라지고 행복에 겨운 동물들의 울음소리, 요란하게 발 구르는 소리, 고함 소리, 만세 소리,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로 온 뜰이 떠나갈 듯 했다.”

 

장엄한 춤

 

「나니아 연대기」에서 루이스가 그리는 신은 “그 앞에서 우리가 춤출 수 있는 신”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나님 앞에서 춤추고 있나요? 하나님을 절대군주 같은 분으로만 알고 있다면 그런 하나님 앞에서는 춤출 마음이란 생겨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나니아의 구원받은 백성들은 아슬란 앞에서 신나게 춤을 추었습니다. 얼마나 신나게들 춤을 추어댔는지 거대한 사자 아슬란의 모습이 그 춤판에 묻혀 거의 보이지 않게 될 정도였다고 「사자, 마녀, 옷장」은 전합니다.


사실은, 이러한 거대한 춤판이 벌어지는 순간이야말로 나니아의 신, 아슬란의 진짜 모습이 계시되는 순간입니다. 아슬란의 본체는 다름 아니라 거대한 춤, 장엄한 춤이기 때문입니다. 「순전한 기독교」에서 루이스는 기독교의 신은 다른 종교나 철학의 신처럼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역동하며 약동하는 활동, 생명, 일종의 드라마에 가까운” 존재, “일종의 춤”에 가까운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 태초에 ‘춤’이 있었던 것입니다. ‘삼위일체’라는 사랑의 춤이, 말입니다. 그 춤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라고 우리를, 이 세상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 같이 춤추자"고 말입니다. 이 춤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는 이 말씀을 듣게 됩니다. "Shall we dance?"라는 말씀 말입니다. 나니아의 백성들은 나니아의 주(主) 아슬란에게서 이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니아에서 아슬란이 있는 곳에서는 늘 춤판이 벌어집니다.


나니아의 숲속에서 벌어지는 이 춤판은 안전한 학교 교실에서만 세계에 대해 배웠던 이들이라면 무서움을 느낄만한 야성(野性)과 원시(原始)와 이교(異敎)가 약동하는 공간, 숲속 거목들과 드라이어드들과 파우누스들이, 바쿠스들과 실레노스들과 마이나스들이, 난장이들과 요정들과 거인들이 각양각색의 환호성을 내지르며 피들과 플루트와 북 소리에 맞춰 거침없이 몸을 흔들며 뛰어노는 현장입니다. 수잔과 루시도 겁이 났습니다.

 

“만일 아슬란이 없는 자리에서 저 바쿠스며 저 야성적인 여자[마이나스]들이랑 같이 있게 된다면 난 무서울 것 같애.” 

“나도 그래.” 루시가 맞장구를 쳤다. (「캐스피언 왕자」 11장)

 

그러나 그 자리에 아슬란이 있습니다. 왕(王)의 왕(王), 주(主)의 주(主), 모든 “신(神)들 중에 뛰어난”(시 136:2) 아슬란이 그 자리 한가운데에서 그 겁나도록 신나는(mysterium tremendum et fascinans) 춤판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참 신은 우리를 그 거대한 춤에 참여케 합니다. 생명 없는 물체가 되어버린 만물을 깨워 우리와 “손을 맞잡고 기쁨에 겨워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게 만들어줍니다. 장엄한 춤이신 당신 앞에서.


「나니아 연대기」에서 파우누스와 이 춤을 추는 인간은 루시입니다. ‘반짝이는 눈’을 가진 루시 말입니다. 설국(雪國)이 되어버린 세계는 아슬란의 등을 타고 오는 이 루시들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롬 8:19-21)



<빛과 소금> 2020년 8월호 / 이종태


posted by 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