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4) : '파라다이스 여행'과 '내적 체험'

2014년 8월의 추천 도서


토마스 머튼 윌리엄 쉐넌 (4)

'파라다이스 여행' '내적 체험'




*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

   (1) 고요한 등불(Silent Lamp)  http://spirituality.co.kr/258

   (2) 토머스 머튼: 생애와 작품(Someting of a Reble) http://spirituality.co.kr/282

   (3) 머튼 백과사전 (The Thomas Merton Encyclopedia) 외 http://spirituality.co.kr/288

   (4) 파라다이스 여행과 내적 체험 (Paradise Journey & Inner Experience) 


이 달은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의 내적 체험과 이 책에 대한 해설이 담긴 윌리엄 쉐넌(William H. Shannon, 1917-2012)의 토마스 머튼의 파라다이스 여행를 소개합니다. 



1. 내적 체험 (The Inner Experience: Notes on Contemplation. Maryknoll, NY: HarperOne, 2003.)

 

    관상(contemplation)이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머튼이 수도 생활 초기부터 가져왔던, 그리고 글과 강연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대답해 왔던 중요한 질문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 질문을 다루고 있는 그의 첫 번째 작품은 《관상이란 무엇인가What is Contemplation?》(1948)라는 책이고, 마지막 작품은 이 책을 개정한 《내적 체험》(1968)입니다.[각주:1] 사실 전작의 개정판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책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 내용과 분량에 있어서 관상에 대한 머튼의 성숙한 사상 이 《내적 체험》에 담겨져 있습니다. 머튼은 이 책에서 이전보다 넓은 관점에서 관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그가 그동안 동양 종교를 연구하거나 현대 과학기술 사회에 대해 숙고하며 얻은 통찰들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머튼은 선불교의 사토리(satori)를 언급하며 자연 질서 안에서 거의 "임상적으로 완벽한" 내적 자아 실현의 예라고 말합니다. 그는 사토리는 "영혼의 내핵이 폭발하듯 열려서 가장 깊은 자아를 드러내는 영적 깨달음"이라고 이해합니다(7). 그에 비해서 기독교의 신비 체험은 "내적 자아를 인식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초자연적인 믿음의 강화에 의해서 우리의 내적 자아 속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12). 다시 말해 기독교적 관상은 내적 자아의 깨어남을 통해서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접촉하는 것"입니다. 모든 지식을 넘어서 말입니다(42).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관상에서 중요한 것은 향유도, 즐거움도, 행복도, 평화도 아닙니다. 그것은 최상의 사랑 그리고 해방된 영적 사랑의 활동 안에서 진리와 실재를 초월적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관상에서 중요한 것은 만족이나 안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깨달음과 생명과 창조성과 자유입니다. 사실 관상은 사람의 가장 높고 본질적인 영적 활동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신의 아들됨을 가장 창의적으로 그리고 역동적으로 확증하는 것입니다. …… 그것은 사람이 그의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 아들(the Son)이 그의 아버지와 대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의 그리스도가 깨어나는 것이며, 우리의 영혼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깊은 '나' 안에 있는 진리(the Truth)와 신적 자유(the Divine Freedom)의 승리입니다. 그 가장 깊은 '나' 안에서 아버지가 아들과 하나가 되십니다. 믿는 자에게 주신 성령 안에서 말입니다. (34)


    또한 흥미롭게도 머튼은 TV시청자와 관상가를 비교하며, 신비한 매력에 끌려 수동적인 상태에 이르는 것은 서로 닮았지만, 사실은 무비판적으로 TV에 흡수되는 시청자의 모습은 욕망과의 치열한 싸움 뒤에 수동적인 연합(또는 infused contemplation)에 이르는 관상가의 삶의 정반대에 서 있다고 말합니다. 참된 관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의 감각과 감정과 의지를 물질적 또는 일시적 수준에 묶어 두는 모든 것들과 아주 활발하게 그리고 고집스럽게 투쟁해야 합니다. 관상의 삶보다 활동적이고 강력한 형성(formation)을 요구하는 삶은 없습니다. 관상의 삶보다 외부적 요소들에 대한 의존에서 가차 없이 벗어나기를 강하게 요구하는 삶은 없습니다(126-27). 머튼에 의하면 관상은 삶의 일부가 아닙니다. 관상은 삶을 하나로 묶고 통합하게 합니다. "관상의 삶은 단순히 인간적 기술과 훈련이 아니라 우리 가장 깊은 영혼에 계시는 성령의 삶입니다"(45). 


      사실 이 책은 머튼이 출판을 보류해 놓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타계하였기 때문에,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2003년에야 윌리엄 쉐넌의 편집으로 정식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토머스 머튼의 묵상의 능력》(윤종석 옮김, 두란노, 2006)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번역판은 제목과 용어뿐만 아니라 장(chapater) 순서도 원서와 다르게 편집됨으로써 적지 않은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번역판이 출간되기 전에 대학원 수업 중에 이 책의 일부를 번역한 것이 있어서 개인 블로그에 올려 두었습니다. 제가 번역을 막 시작하던 때에 한 것이라 서투른 부분이 많지만, 책을 구입하기 전에 만약 《내적 체험》의 맛을 조금이라도 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다음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내적 체험》 제13장 죄의식 http://nephesh.tistory.com/336.



2. 토마스 머튼의 파라다이스 여행 (Thomas Merton's Paradise Journey. Cincinnati, OH: St. Anthony Messenger, 1981

     《내적 체험》에 대한 아주 훌륭한 안내는 윌리엄 쉐넌의 《토마스 머튼의 파라다이스 여행》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관상에 대한 머튼의 주요 저작 9권에 대한 해설서입니다. 각 작품들의 집필과 출판에 관한 배경 이야기들은 매우 흥미롭고 각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탁월한 머튼 학자 쉐넌은 책의 핵심 내용들을 아주 정확하고명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니다. 이 책에 포함된 머튼의 저작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1장 : What Is Contemplation?

제2장 : Seeds of Contemplation

제3장 :  The Ascent to Truth

제4장 : Thoughts in Solitude and "Notes for a Philosophy of Solitude"

제5장 : The Inner Experience

제6장 : New Seeds of Contemplation

제7장 : The Climate of Monastic Prayer

제8장 : Zen and the Birds of Appetite

제9장 : Is the World a Problem?


이 작품들에 대한 해설이 시기적으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관상에 대한 머튼의 사상이 발전해 가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책은 아직 한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는데 이전에 대학원 수업 때 동학들과 함께 나누어 번역했던 것들 중 제가 맡아서 번역한 일부분을 역시 제 개인 블로그에 올려 두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부족하나마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http://nephesh.tistory.com/333. 이것으로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를 마치며, 그동안 재미 없는 글도 관심을 갖고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권혁일


  


  1. 실제로 머튼이 개정작업을 한 때는 1959년 여름이지만, 최종으로 수정한 것은 1968년 그가 아시아 여행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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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3) : 머튼 백과사전 외

2014년 7월의 추천 도서


토마스 머튼 윌리엄 쉐넌 (3)

머튼 백과사전


*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

   (1) 고요한 등불(Silent Lamp)  http://spirituality.co.kr/258

   (2) 토머스 머튼: 생애와 작품(Someting of a Reble) http://spirituality.co.kr/282

   (3) 머튼 백과사전 (The Thomas Merton Encyclopedia) 외

   (4) 파라다이스 여행과 내적 체험 (Paradise Journey & Inner Experience) : 2014년 8월15일


지난 달에 이어 이 달의 추천 도서로 윌리엄 쉐넌(William H. Shannon, 1917-2012)이 쓰거나 편집한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 서적들을 몇 권 소개하고자 합니다. 



1. 토마스 머튼 백과사전 (The Thomas Merton Encyclopedia. Maryknoll, NY: Orbis, 2002.)

      한 인물에 대하여 이런 백과사전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그리고 연구의 가치가 있는 인물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20세기의 위대한 수도자, 작가 그리고 영적 지도자인 토마스 머튼은 많은 저작물들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매우 독특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글들은 여러 매체에 중복해서 출판되기도 하였고, 지금도 계속해서 새롭게 출판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생각과 저술 주제는 개인적인 성장과 더불어 계속해서 변하고 발전하였습니다. 그래서 머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과 그의 글들의 탄생과 변화와 소멸을 제대로 '추적'하는 데에는 이 백과사전이 매우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머튼을 연구하는 학자들 뿐만 아니라, 머튼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어하는 열정적인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아직 한글로 번역되어 있지 않아서 한국에서는 제한적인 연구자들과 독자들만 이 책을 접할 수 밖에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 백과사전에는 (1) 머튼이 쓴 책들, (2) 그의 저술에 나타난 핵심적인 주제들, (3) 그의 삶에서 중요한 영향을 주고 받았던 사람들, (4) 그가 살았던 장소들에 관한 알찬 정보들이 알파벳순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윌리엄 쉐넌, 크리스틴 보센(Christine M. Bochen), 패트릭 오컨널(Patrick F. O'Connell)은 모두 국제토마스머튼학회(ITMS)의 창립멤버이며 회장을 지낸 탁월한 머튼 학자들입니다. 이들 중 연장자인 쉐넌은 이미 작고하였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여전히 머튼 연구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이 출판된 지가 이미 십여 년이 훌쩍 넘었기 때문에 2000년 대에 출판된 자료들은 반영되지 않았고, 그의 책의 해외 번역본이나 머튼이 수도원에서 한 강의가 녹음된 오디오 자료들은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출판되고 있는 그의 강의 자료들이 어느 정도 완간이 될 때, 이 백과사전도 업데이트가 되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2. 토마스 머튼의 편지 모음 (Collected Letters of Thomas Merton. 전5권.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s, 1985-1994.) 외

     한 인물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고 싶다면, 그가 쓴 일기와 편지 등의 개인적인 글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머튼은 수도원에서 참으로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머튼 유작 관리위원회에서는 윌리엄 쉐넌를 총편집자로 선임하여 그의 편지들을 주고 받은 사람들과 주제 등을 기준으로 선택하여 다섯 권의 묶음집으로 출간하게 하였습니다. 이 중 쉐넌은 첫 번째 책인 The Hidden Ground of Love: Letters on Religious Experience and Social Concerns Witness to Freedom: Letters in Times of Crisis를 직접 편집하였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틴 보센과 함께 이 다섯 권의 모음집 중 핵심적인 글들을 간추려서 Thomas Merton, A Life in Letters: The Essential Collection (2008)으로 출간하였는데, 이 축약본은 다섯 권의 편지 모음집들을 다 읽기 어려운 독자들에게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이 외에도 그는 머튼이 냉전 시대 때에 전쟁과 평화에 관한 주제로 쓴 편지들을 모은 Cold War Letters (2006)를 크리스틴 보쉔과 함께 편집하여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다음과 소개할 책과 함께 머튼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사상을 잘 보여 줍니다.


  


3. 평화를 향한 열정 (Passion for Peace)

     이 책은 머튼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에세이들의 모음집입니다. 윌리엄 쉐논은 전쟁과 평화에 관한 머튼의 에세이 23편과 머튼의 유명한 <평화를 위한 기도>를 묶어  Passion for Peace: The Social Essays 라는 제목으로 1995년에 출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시 축약하여 Passion for Peace: Reflections on War and Nonviolence라는 제목으로 2006년에 다시 독자들에게 내놓았습니다. 아마도 쉐넌이 이 책을 이렇게 축약본으로 재출간한 것은 위의 편지글 모음집의 경우와 같이 두꺼운 책을 다 읽기 어려운 일반적인 독자들을 배려한 것이라 추측됩니다. 그런데 약 반 세기 전에 쓰여졌고, 이미 출간되었던 책이 십여 년 후에 축약본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이 일종의 '고전(classic)'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20세기 중엽에 쓰인 머튼의 글들이 21세기 초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혜와 의미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서평은 필자가 영어로 쓴 졸고가 있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은 참조하시길 바랍니다.(http://nephesh.tistory.com/254)



4. 깨달음의 기도 (Silence on Fire : The Prayer of Awareness)

     마지막으로 윌리엄 쉐논은 머튼의 1차 자료(에세이, 편지 등)를 편집하거나, 머튼에 대한 2차 자료(안내서, 평전, 백과사전, 논문 등)를 쓴 것 외에도, 자신이 머튼의 글을 읽고 연구하며 얻은 지혜와 통찰력을 가지고 신앙이나 삶에 대해 직접 쓴 책들도 여러 권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권이 한국에 《깨달음의 기도》(은성, 2002)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소개된 Silence on Fire : The Prayer of Awareness (New York: Crossroad, revised edition, 2000)입니다. 이 책은 관상에 이르는 침묵기도를 그 소재로 하고 있는데,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인 "깨달음의 기도"입니다. 여기서 쉐넌이 말하는 '깨달음'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현존(presence) 안에 있음을 '인식(aware)'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하나님의 현존 안에서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번역이 아주 흡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글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니 한국어 독자들에게는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 달에는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머튼의 관상에 대한 성숙한 사상이 담겨져 있는 The Inner Experience와 이 책에 대한 쉐넌의 해설이 담긴 Thomas Merton's Paradise Journey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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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2) : Something of a Rebel

2014년 6월의 추천 도서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2)

토머스 머튼: 생애와 작품 (Something of a Rebel)





     지난 4월에 이어 이 달의 추천 도서로 윌리엄 쉐넌(William H. Shannon, 1917-2012)이 쓴 토마스 머튼 안내서를 한 권 소개하고자 합니다. 'Something of a Rebel' : Thomas Merton, His Life and Works : An Introduction (Cincinnati, OH: St. Anthony Messenger, 1997). 비교적 얇으면서도 다소 긴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영성가이자 작가 중의 한 사람인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에 대한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인 입문서입니다. 권위 있는 머튼 학자인 윌리엄 쉐넌은 "토마스 머튼을 잘 알지 못하거나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머튼을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쉐넌은 먼저 제1장에서는 머튼의 생애를 수도승이 되기 전과 후로 나누어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가장 짧은 제2장에서는 왜 머튼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제3장에서는 머튼의 작품들에 나타나는 주제들 중 주요한 여덟 가지를 선정하여 그의 탁월한 식견을 바탕으로 명쾌하게 해설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머튼 도서관"이라는 제목이 붙은 제4장에서는 '머튼 독서'를 시작하는 이들이 그의 수많은 저작들 -머튼의 글과 강의는 지금도 계속 새롭게 출판되고 있습니다 - 에 입을 쩍 벌리고 포기하지 않도록, 처음에 읽으면 좋을 책들을 몇 권 추려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일종의 '여행 안내서'입니다. '토마스 머튼'이라는 미지의 '여행지'로 떠나고자 하는 이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 또는 여행 도중에 손에 들고 참고해야 할 '여행 안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Something of a Rebel"이라는 이 책의 제목에 흥미를 느끼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쉐넌은 이 제목을 머튼이 영국에서 다니던 고등학교(Okaham School)의 교장선생님이 1942년 겟세마니 수도원장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에서 가져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탈보트 그리피스(G. Talbot Griffith) 교장에 의하면, 오캄 스쿨 재학시절 머튼은 "동료들 가운데 다소 전설적인 인물이었으며 분명히 어느 정도 반항아(something of a rebel)"였다고 합니다. 쉐논은 머튼이 부정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모든 삶의 국면에서 안락하고 생명력이 없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점에서 '반항아'였다고 말합니다. 쉐논은 그래서 "something of a rebel"이라는 어구가 그의 생애와 작품을 관통하는 묘사라고 믿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가 어떻게 생명력이 없는 과거에 반항을 하였는지는 여러분들께서 직접 독서를 통해 파악하시도록 남겨 두고자 합니다. 이 책은 이미 10여년 전에 오방식 교수(장신대)에 의해 번역되어《토마스 머튼:  생애와 작품》(서울: 은성, 2005)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으니, 머튼을 공부하는 이들 또는 머튼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활용하기 쉬운 좋은 자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쉐넌은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자신이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의도한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머튼]의 글들을 통하여 머튼은 당신과의 대화로 들어갈  것이다. 그는 당신에게 자신에 대하여 말할 것이며 당신은 그 안에서 거울에 비취는 당신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볼 것이다. - 토마스 머튼:  생애와 작품》(10).



*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


   (1) 고요한 등불(Silent Lamp)  http://spirituality.co.kr/258.


   (2) 토머스 머튼: 생애와 작품(Someting of a Reble) 


   (3) 머튼 백과사전 (The Thomas Merton Encyclopedia) 외 : 2014년 7월 15일


   (4) 파라다이스 여행과 내적 체험 (Paradise Journey & Inner Experience) : 2014년 8월15일




/ 권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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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1) : 고요한 등불

2014년 4월의 추천 도서


토마스 머튼윌리엄 쉐넌(1)

고요한 등불 (Silent Lamp)


사진1. The Merton Seasonal 표지에 실린 윌리엄 쉐넌의 초상화


     이 달의 추천 도서로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 독서를 위한 윌리엄 쉐넌(William H. Shannon, 1917-2012)의 책들을 선정하였습니다. 쉐넌은 머튼을 좀 더 잘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또는 머튼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안내자(guide)입니다. 그는 머튼의 타계 직후인 1970년대부터 그가 가르치던 나사렛 대학교(Nazareth College, Rochester, New York)에서 머튼 강의를 시작했고, 1887년에는 몇 명의 학자들과 함께 국제 토마스 머튼 학회(International Thomas Merton Society)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습니다. 머튼의 사후에 출간된 많은 머튼의 글들(1차 자료들)이 그의 손을 거쳤으며, 머튼에 관한 중요한 해설서, 평전, 사전, 논문들(2차 자료들)의 목록에도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습니다. 실로 그는 머튼 연구의 선구자이며, 탁월한 머튼 학자(Merton scholar)입니다. 그래서 2년 전인 2012년 4월 29일, 윌리엄 쉐넌이 94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 국제 토마스 머튼 학회의 계간지 The Merton Seasonal은 쉐넌을 특집 주제로 다루며 그를 기념하였습니다(사진1). 이에 현재 국내에 번역된 작품들을 중심으로 토마스 머튼 독서에 도움이 되는 쉐넌의 책들을 몇 번에 걸쳐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가 아직 학생으로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는 까닭에 4월의 추천 도서로 이 글을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마무리 하는 데에는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사진2. Silent Lamp 영문판

   먼저, 머튼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쉐넌이 쓴 머튼 평전 《고요한 등불: 토마스 머튼의 이야기》(은성, 2008)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 번역본의 원전은 Silent Lamp: The Thomas Merton Story(NY: Crossroad, 1996)입니다. 나사렛 대학교에서 쉐넌 교수에게 직접 머튼을 배운 오방식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가 번역하였습니다. (제가 오방식 교수님을 통해서 머튼을 알게 되고 배웠으니, 쉐넌은 저에게 스승님의 스승님이 되는군요.) 


     한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생애를 아는 것은 매우 많은 도움이 됩니다. 토마스 머튼의 경우에는 유명한 자서전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1948)이 있지요. 물론 《칠층산》은 머튼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듣는 그의 생애 이야기이지만, 비교적 초기의 작품이라 이후 약 20여년 간의 그의 삶은 담겨져 있지 않습니다. 머튼은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칠층산》이 출판 된 지 몇 년 후, 그는 "칠층산의 머튼은 이미 죽었다"라고 선언할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해 갔습니다. 이러한 변화와 역동을 담아 내고 있는 것은 머튼의 전기들입니다.


     현재까지 머튼의 전기들은 영어로 여러 종류가 출간되어 있는데요, 그중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마이클 모트(Michael Mott)가 쓴 The Seven Storey Mountains of Thomas Merton[토마스 머튼의 칠층산](1984)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머튼의 일생에 대해 매우 자세한 내용까지 담고 있는 연구서이기 때문에 분량이 매우 두껍습니다. 그리고 머튼에 대한 다양한 모자이크 조각들을 담고 있어서 머튼 초보자들이 읽기에 쉽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한 아직 한국어 번역본도 없습니다. 쉐넌의 《고요한 등불》도 한국어 번역본이 564쪽에 이르기 때문에 결코 짧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토마스 머튼의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이야기식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독서하기에 버거운 정도는 아닙니다. 그의 생애와 관련된 세부적인 사건/사실들은 장(chapter) 중간 중간에 삽입된 연대기에 담겨져 있고, 본문에서는 각 장의 주제와 관련된 사건들만 선택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번역도 머튼을 전공한 학자가 했기 때문에 원문의 의미를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저를 비롯한 몇 명의 대학원생들이 수 차례에 걸쳐 교열, 윤문 작업에 동참했기에 문장도 매끄러운 편입니다. 물론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머튼의 생애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을 관통하고 있는 저자, 윌리엄 쉐넌이 쓴 평전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머튼에 대한 종합적이면서도 분명한 이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림으로 비유하면 추상화가 아니라 사실주의적인 인물화라고 할까요? 그렇다면 이 책에서 쉐넌이 그리고 있는 머튼은 어떤 인물일까요? 그것은 이 책의 제목 "고요한 등불(Silent Lamp)"에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그가 이러한 제목을 붙이게 된 경위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래 "고요한 등불(Mei Teng)"이라는 말은 머튼이 《장자의 길(The Way of Chuang Tzu)》이라는 책을 쓰는 데 도움을 주었던 중국인 학자 존 우(C. H. Wu)가 1965년에 머튼에게 붙여 준 중국식 이름입니다. 쉐넌은 이 때가 머튼의 생애에 있어서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때, 곧 완전히 은수자(hermit)로 살기 시작한 때이고, 이 이름이 머튼이 가톨릭을 넘어서 보편적인 영성을 향해 가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말이라 생각해서 그것을 제목으로 채택하였다고 합니다. 나아가 쉐넌은 머튼을 많은 이들의 영적인 삶에 빛을 비추는 "등불"로, 그리고 시대와 공간과 전통과 문화를 넘어서도 그 빛을 잃지 않는 "보편적 인물(homo universalis)"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머튼의 관상적 영성(comtemplative spirituality)에서 찾습니다.(29-34쪽). 그러므로 아마 이 책에서 그리는 머튼을 단 한 단어로 요약을 한다면 '관상가(contemplative)'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관상가'라는 단어는 일종의 상징과 같아서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머튼의 경우, '작가', '사회비평가'라는 정체성이 '관상가'에 포함되지요. 그리고 머튼은 수도원에 들어 가기 이전부터,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살 때부터 '관상가'였습니다.  

 

사진3. <고요한 등불>한글 번역판

   전기류의 글이면서도 특이하게도 이 책은 제1장을 토마스 머튼의 은사(gift)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쉐넌이 선정한 머튼의 주요한 은사 세 가지는 문재(文才, 글쓰기)와 신앙, 그리고 수도자로서의 소명입니다. 이 세 가지는 재능(talent)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머튼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gift)라는 관점에서 이해되는 것이 더 적당할 듯합니다. 이후에 전개되는 장들에서 이 은사들이 각각의 또는 공통의 흐름을 이루면서 이야기를 끌어 갑니다. 제2장부터 제6장까지는 수도자가 되기 이전까지의 머튼의 삶을 다섯 시기로 나누어 이야기합니다. 주로 자서전 《칠층산》에 담겨진 내용들이지만, (아마도 수도원 장상들의 뜻으로) 집필/출판 과정에서 생략되거나 완화된 뒷 이야기(behind story)들도 함께 담겨져 있어서 칠층산의 머튼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7장에서 제9장까지는 그가 겟세마니 수도원에 들어간 1941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각각의 장이 첫 번째 장에서 이야기한 세 가지 은사를 하나씩 제목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세상으로 돌아옴"이라는 제목이 붙은 제10장은 '세상을 버리고' 수도원으로 들어 갔던 머튼이 1958년 결정적인 방향 전환(또는 성장)을 경험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 온'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귀환' 이야기는 이른바 '성숙한 머튼(mature Merton)'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입니다. 이후 머튼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8년에 갑작스럽게 타계할 때까지 냉전과 평화, 인종 평등, 수도원 갱신, 종교 간의 대화 등의 사회적 이슈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글을 썼는데, 이 내용은 제11장에서 제14장에 담겨 있습니다. 탁월한 머튼 학자 쉐넌은 이 마지막 장들에서 각각의 주제와 관련된 머튼의 사상을 그의 생애를 바탕으로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윌리엄 쉐넌이 이 책의 한국어판에 부치는 "감사의 글"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한국에 계시는 친애하는 독자님들, …… 우리를 분리하는 것은 단지 지리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모두의 존재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우리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는 사랑의 근원이신 한 분이신 하나님 안에서 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6쪽). 저는 만약 머튼이 자신의 평전의 서문에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글을 쓴다면 바로 이렇게 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머튼은 "숨어 있는 사랑의 근원(the Hidden Ground of Love)"이신 하나님 안에서 모든 인류가 하나로 연합되어 있음을 경험하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토마스 머튼도, 윌리엄 쉐넌도 모두 이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가 그들이 남긴 글들을 읽고, 인류의 하나됨에 대한 그들의 사상에 동의한다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로 연합되어 있음을 경험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역시 쉐넌이 쓰고, 오방식 교수가 옮긴 《토머스 머튼: 생애와 작품》(은성, 2005)을 소개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국내에 번역된 토마스 머튼의 또 다른 전기로는 《지혜로운 삶: 토마스 머튼의 생애(Living with Wisdom: A Life of Thomas Merton)》(분도, 1994)가 있습니다. 이 책도 머튼과 직접 편지를 주고 받던 평화운동가 짐 포리스트(Jamse H. Forest)가 쓴 훌륭한 전기이므로 머튼을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일독을 권합니다. / 권혁일



* '토마스 머튼과 윌리엄 쉐넌' 시리즈


   (1) 고요한 등불(Silent Lamp)  


   (2) 토머스 머튼: 생애와 작품(Someting of a Reble) : 2014년 6월15일


   (3) 머튼 백과사전 (The Thomas Merton Encyclopedia) 외 : 2014년 7월15일


   (4) 파라다이스 여행과 내적 체험 (Paradise Journey & Inner Experience) : 2014년 8월15일





고요한 등불

저자
윌리엄 셰논 지음
출판사
은성 펴냄 | 2008-06-01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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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층산

저자
토머스 머튼 지음
출판사
바오로딸 | 2009-03-15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다시 읽고 싶은 명작' 시리즈, 제3권 『칠층산』. 21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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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리우스의 신령한 설교》

2014년 2월의 추천 고전을 2월을 넘겨서 게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꼭 2월에 읽어야 한다는 의미로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영성 고전을 한 달에 한 번씩 소개한다는 의도로 게시하는 것이니 널리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래의 추천글을 읽어보시고 관심이 생기신다면, 시간을 내어 고전을 직접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  편집자



마카리우스의 신령한 설교》

이후정 역, 은성(1993)


 

마카리우스는 누구인가

     필자가 이 달의 영성 고전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마카리우스(Pseudo-Macarius, c.300-391)의 《신령한 설교》이다. 여기엔 50 편의 <신령한 설교><대서한>이 포함되어 있다. 이 글들의 저자는 성서와 초대 교회 사막 영성에 영적 뿌리를 둔 위대한 영성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4 세기 후반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도자들로부터 탁월한 영적 지도자로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수련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상징과 비유들을 사용하면서 값진 조언과 통찰들을 전해 주었다. 이러한 마카리우스의 가르침은 곧 문헌화 되었고, 당대의 수도자들 뿐만 아니라, 이후 동방과 서방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속적인 감화를 주는 영성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마음과 성령

     이러한 마카리우스의 영적 조언의 큰 줄기는 영성 생활에서의 마음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이다. 우리 마음은 지성적 활동의 중심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일, 그리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일, 뭔가를 갈망하고 욕망하는 일 등이 모두 마음에서 일어난다. 즉, 마음은 지성과 감성과 욕망과 의지 등의 모든 내적 활동의 중심이며, 또한 우리 신체 기관들을 총괄하는 제어탑(control tower)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음은 우리 전 인격의 중심이다. 그리고 여기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이다. 이곳을 통하여 성령이 오시고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오신다. 하지만, 사탄과 악마들 또한 이곳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어와 우리의 생각을 어지럽히고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기도 한다.

 

마음 그 자체는 작은 그릇이다. 하지만 그 속에 용들이 있고, 사자들도 그곳에 있다. 그 속에 독을 가진 짐승들이 살고 있으며, 모든 악마의 비장품들이 들어 있다. 또한 그곳에는 가파른 절벽과 거친 길들도 있다. 하지만 그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천사들이 있고 그분의 나라도 있다. 그곳엔 생명이 있고 빛이 있다. 또한 그곳에 사도들이 있고 천상의 도성들이 있고 은혜의 보화들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그곳에 있다

-신령한 설교, 43:7.

 

     마카리우스는 이러한 우리의 마음의 모든 영역을 성령으로 온전히 채워가는 일을 수련의 중요한 과제로 강조한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깨닫는 일뿐만이 아니라, 생각을 조절하고, 감정과 욕망을 다스리는 일 등이 모두 우리가 그릇된 영의 지배에서 벗어나 성령과 연합하는 일에 관계된 것이다. 마카리우스는 이렇게 성령을 따르는 마음이 하나님과 그분의 은사를 바로 알아 보고 올바로 경험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임을 소상히 밝혀준다.

 

     그러므로 영적 수련의 길은 성령과의 협력을 통한 오랜 동안의 정화의 과정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중심적 것에 대한 집착(마카리우스는, 이를 세상적인 것들이라고 칭한다)과 천상적인 것(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충만한 것)을 잘 살펴 분별하고, 세상적인 것을 떠나고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우리 속에 채우려는 지향을 가지고 언제나 살아야 한다. 이런 삶의 정점은 아파테이아(apatheia)의 상태, 즉 세상적 욕망과 감정은 모두 벗어버리고 성령과 천상의 성격으로만 순전히 채워진 상태이다. 여기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임재를 참되게 경험하며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시작된다.

 

     마카리우스는 이렇게 성령과 협력하는 영적 수련에 있어서 겸손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한다. 자기 비움의 겸손, 자기 판단의 교만을 벗어날수록 우리 마음 속(이는 영적 전쟁의 전쟁터이다)에서 성령의 영토는 점점 넓어져가며, 이와 함께 우리의 생각과 욕망과 감정 나아가 몸의 태도와 습관까지, 한마디로 우리 전 인격체로서의 몸이 점진적으로 성화되어 간다. 이러한 변화의 궁극에서 우리는 부활하시어 영화로워지신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그분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마카리우스는 이러한 부활과 영생의 삶이 종말에만 있는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카리우스는, 주님의 제자들이 변화산에서 영화로워지신 빛나는 그리스도의 몸을 보았던 것을 거듭 거듭 상기시키면서, 부활 그리스도의 영화로운 몸을 알아보는 일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여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비전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마카리우스의 영성 생활에 대한 가르침의 핵심은 신자의 삶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속에 임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재적 임재를 감지하며 그분과 함께 하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카리우스는 이러한 만남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또한 그러한 일에 참여할 가능성이 지닌 우리 인간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를 거듭해서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비전에 신자들이 어떻게 신자들이 다가갈 수 있는 가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후대에 끼친 영향

     이러한 마카리우스의 가르침은 이후 헤시카즘(Hesychasm)으로 대표되는 동방 교회의 영성 전통 형성에 큰 토대가 되었다. 오리게누스(Origenus)와 에바그리우스(Evagrius)에서 비롯된 지성적 영성과 마카리우스의 마음의 영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동방 교회 영성을 형성해 간 것이다. 서방 교회 전통에서도 마카리우스의 설교들과 조언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서방 교회에서 신학과 교리가 삶과 실천으로부터 멀어지고, 그 영성이 사변적이고 현학적이지만 무미건조한 것으로 변해가려고 할 때마다, 이런 경향에 경종을 울리고 이의 위험성을 알리는 시금석의 역할을 거듭해 왔다.

 

     흥미로운 것은 개신교 영성 전통에 마카리우스의 글들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한 예로 경건주의(pietism) 운동의 지도자들은 마카리우스의 글에서 많은 통찰을 얻었다. 종교 개혁 이후 오직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이신칭의 교리를 법정적 용어처럼 이해하면서 믿음은 이런 교리에 대한 지적 동의로만 설명하려는 하는 개신교 스콜라주의적 성향이 나타났을 때, 경건주의자들은 이를 비판하면서 이신칭의의 진정한 의미는 거듭남이라는 생명과 삶의 덕목이라고 강조하였다. 마카리우스의 글들은 이런 경건주의 영성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주장이 초대 교회의 사도적 권위를 갖춘 것이라는 점을 지지해 주었다. 그래서 요한 아른트(Johann Arndt)는 이신칭의 교리의 진정한 의미는 마카리우스의 가르침에서 옳게 드러난다고 하는 주장을 견지하였다(G.A. Maloney, Pseudo-Macarius, 24). 또한 18세기 부흥 운동 당시에는 마카리우스의 조언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경험에 다가가는 데 중요한 권위있는 초대 교회의 가르침으로 인정되었다.


오늘날 갖는 의의 

     오늘날, 우리에게 마카리우스의 글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선, 신앙 생활에서 교리와 실천이 분리되고, 신앙이 삶과 동떨어진 것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큰 위험으로 남아 있다. 마카리우스의 조언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위험을 감지하게 하고 그런 것들을 피하게 할 것이다. 이에 더하여, 마카리우스의 글은 우리 가운데 있는 경험을 중시하는 사람들, 특히 감정주의적 신앙 체험에 천착하는 이들에게 바른 신앙의 길을 제시하는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마카리우스는 기독교인의 내적 경험은 우리의 감정과 경험과 지식과 의식까지도 모두 넘어서는 어떤 것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또한 그는 하나님과 그분의 은사를 경험하는 일에 영적 규칙을 따르는 수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의 생각과 욕망과 감정을 정화하고 조절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따라서, G. A. 말로니(Maloney)가 말하고 있듯이, “겸손과 사랑을 강조하는 마카리우스는 은사주의적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를 마치 자신의 권력의 근거인양 사물화하고,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처럼 여기다가 결국 그들의 영적 여정을 허망한 것을 만드는 것을 피하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Pseudo-Macarius, p.26).

 

     다시 말하면, 회개의 중요성, 성령의 역할, 마음의 정화, 점진적 변화와 성장, 부활 그리스도와의 만남 등을 강조하면서 마카리우스의 글들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지성과 감성이 어우러지고, 지식과 실천이 어우러지게 하여서, 신앙이 지식이나 명제들에 대한 지적 동의에 머무는 것에서 벗어나 성령을 통하여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되게 하고, 그 삶에서 하늘의 기쁨 맛보도록 하는 일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런 마카리우스의 글과의 만남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  더 순결한 것으로 정화되고, 그리하여 우리의 영적 생활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더 풍성해지고, 우리의 태도는 좀 더 덕스러워지기를 소망해 본다. / 남기정.



Pseudo-Macarius (Paperback)

저자
#{for:author::2}, Pseudo-Macarius (Paperback)#{/for:author} 지음
출판사
Paulist Pr | 1992-08-01 출간
카테고리
인문/사회
책소개
The writings of Pseudo-Macarius,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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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꼬와 성녀 글라라의 글

2014년 1월의 추천 영성 고전


Pope Innocent III has a dream of St. Francis of Assisi supporting the tilting church (attributed to Giotto)

성 프란치스코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겠으나, 그가 '글'을 남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 프란치스코가 유명한 것은 그의 '삶' 때문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누구의 '삶'을 아는 것이 정말 그를 아는 것일 터. 그러나 과연 우리는 정말 프란치스코의 삶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프란치스코처럼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일 경우 오히려 우리가 그의 삶에 대해서 제대로 잘 모르고 있기 쉬운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우리가 그를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무수히 들어봤다고 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았다고 해서 정말 그를 아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를 오해하고 있기 싶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아야 한다. 그가 자신에 관해 하는 이야기를 말이다. 


물론, 성인(聖人)은 자기 '자신'에 관해 잘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니, 하나님'께' 이야기한다. 프란치스코의 글은, '영성고전'에 드는 책들의 글이 그렇듯, 실은 '기도'다. 형제들에게 '편지'를 쓸 때도, 그들을 '권면'할 때도, 공동체 '회칙'을 내릴 때도, 프란치스코는 실상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기도'인 그의 글을 직접 읽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프란치스코를 만난다. 가공되지 않은, 낭만화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프란치스코를 말이다. 


날 것 그대로의 프란치스코는 모든 '진짜'가 그렇듯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는 불편하리만치 엄격하고 관용적이며, 전통적이고 개혁적이며, 이성적이고 신비적이며, 비관적이고 낙관적이며, 가톨릭적이고 복음주의적이며, 인간적이고 거룩하다. 


역사상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중 으뜸은 단연 프란치스코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그의 글은, 기도문은 복음서의 글만큼이나 단순소박하며, 깊다.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느님이시여, 

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 주소서.


주여, 당신의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실행하도록

올바른 신앙과 확고한 희망과 완전한 사랑을 주시며

지각과 인식을 주소서. 아멘." 


소위 영적으로 '도통'(道通)한 듯 보이는 말은 잘 없다. 프란치스코에게는 그저 '가난'이 하나님께 이르는 '도(道)/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가난'을 이데올로기화한, 이후의 프란치스코 '파'들과 달리 가난을 '주창'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는 가난을 '노래'할 뿐. 


"귀부인이신 거룩한 가난이여, 

주께서 당신의 거룩한 자매인 거룩한 겸손과 함께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프란치스코는 "마음의 가난"을 이렇게 말한다. 


"여러 가지의 기도와 신심행사에 열중하고 육신의 많은 극기와 고행을 하면서도, 자기에게 해가 될 듯한 말 한 마디만 듣거나, 혹은 어떤 것을 빼앗기기만 하면 발끈하여 내내 흥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진정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뺨을 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필자도 프란치스코의 글은 유학을 와 프란치스코회 수사이신 교수님에게서 '프란치스코의 영성'에 대해 배울 때 처음 제대로 읽어 보게 되었다. 


가장 깊은 울림이 있었던 건 프란치스코가 구술했다는, "참되고 완전한 기쁨"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기록해 놓으십시오"...


라고 시작되는 그 글. 여기 소개하기보다는 독자 여러분께 성 프란치스코의 글 모음집을 구하여 그 전체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독하여 보실 것을 권해드리고 싶다. / 이종태




성 프란치스꼬와 성녀 글라라의 글(아씨시의)

저자
프란치스꼬회 지음
출판사
분도출판사 | 2004-10-01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프란치스꼬회의 영성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프란치스꼬와 글라라를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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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 and Clare

저자
Armstrong, Regis J. 지음
출판사
Paulist | 1982-03-01 출간
카테고리
인문/사회
책소개
Francis (c. 1182-1226) and Clare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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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면, 그대 무슨 생각하시나요? : 본회퍼의 《옥중서간》

2013년 12월의 추천고전


찬 바람이 불면, 그대 무슨 생각하시나요?

: 디트리히 본회퍼의《옥중서간》


 

이 달에 함께 나누고 싶은 고전은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의옥중서간》이다


본회퍼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간지가 벌써 68년이 되었지만, 그의 사상과 신학이 녹아 있는 옥중서간》은 작금의 한국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더욱 회람되어야 하는 책이 아닌가 한다. 특히 한 대학생의 대자보로 시작된 안녕하십니까의 물음은 예외 없이 우리 기독인들이 답해야만 하는 경건과 저항에 관한 물음이라고 하겠다


찬 바람을 견디다 못해 이미 얼어붙은 농토처럼 굳어 있는 우리네 영혼에 경건의 의미세상에 대한 저항 정신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책, 옥중서간》! 이 글에서는 먼저 본회퍼의 생애과 배경을 다루고, 그의 신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검토한 후에옥중서간》에 나타난 그만의 경건과 저항의 영성을 다루고자 한다.

 

디트리히트 본회퍼는 1906년 독일 브레스라우(Breslau)에서 아버지 카를(Karl)과 어머니 파울라(Paula)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학적 전통이 유명한 튀빙겐(Tubingen)에서 공부했으며 <성도의 공동생활(Sanctorum Communio)>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3년 히틀러 폭정하에 독일 교회들이 히틀러의 비위를 맞춰가며 그의 목소리를 대변할 때에, 본회퍼는 고백교회(Confessing Church)를 세워 나치에 대항했다. 그 후, 본회퍼는 라인홀트 니버(Reinhold Niebuhr)의 권유로 뉴욕으로 건너갔지만 내가 이 어려운 시기에 나의 조국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다시 재건될 때에 나는 내 조국에 할 말이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조국 독일로 돌아 간다. 계속되는 반 나치 운동을 펼치던 본회퍼는 1943년에 체포되어 테겔 형무소(Tegel Prison)에 수감되어 2년을 지내고 광복을 몇 달 앞둔 1945 4 9일 다른 동료들과 함께 운명을 다하고 만다. 이 시기에 그는 부모 그리고 절친인 베트게(Bethge)와 그의 원숙한 신앙을 교류하게 되었고, 또한 기도문과 시 그리고 다른 에세이 등을 써 보내게 된다. 그의 서거 후, 베트게가 그의 글들을 모아 정리하였으니 그것이 지금 우리의 손에 안긴 옥중서간》이다.

 

옥중서간》에 녹아 있는 본회퍼의 사상, 즉 ‘(머리가 커져버린) 세상에 대한 이해 (The secular interpretation)’, ‘비종교로서의 기독교 (Religionless Christianity)’ 그리고타자를 위한 기독교 (Being there for others)’는 그의 철학적, 신학적 이해를 보여주는 주요한 개념들이다.

 

먼저, 본회퍼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철학자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의 영향하에 있다. 딜타이에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인간 자신의 주체성을 깊이 깨닫게 되었고, 신의 존재를 긴급할 때 부르는 임시방편의 존재나 자기 편의를 위해 임의로 쓰는 존재로 더 이상 인식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딜타이는 신의 존재를 정치나 법 그리고 일반과학의 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로 제시하였다. 본회퍼는 이런 딜타이의 영향으로 성인이 된 세상(A World come of age)’을 언급하였다. ‘성인이 된 세상의 의미는 이미 머리가 커져 버린 세상을 의미하는데, 이는 더이상 하나님의 존재를 찾지도 않고 의지하려하지도 않는 세상이다.


           본회퍼는 또한 칼 바르트(Karl Barth)와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들의 한계를 넘어선 사람이었다. 칼 바르트는 종교적 선험성(Religion a priori, 경험 이전의 직관 혹은 감정)에 빠진 자유주의자들의 모순을 비판했다. 다시 말해서, 바르트는 자유주의자들이 믿음과 신학의 영역을 감정에 국한시키고 형이상학적으로만 치부하며 세상의 일들과는 별개의 것으로 여겼다고 비판했다. 바르트의 영향을 받은 본회퍼는 <옥중서간>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약점은 그들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자리를 결정할 권리를 세상에 양보했다는 것이다그들은 세상과 교회의 싸움에서 비교적 쉬운 길을 선택했다” (180)[각주:1]  

 

본회퍼는 바르트의 영향하에 있었지만 또한 바르트의 실증주의적 입장을 비판했다. 즉, 바르트는 종교적 선험성으로 치닫는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였지만 실제적으로 아무런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바르트]는 교의학적 측면이나 윤리학적 측면에서 어떤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것이 그의 한계이다. 이것 때문에 그의 계시신학은 실증주의적[경험과 실증적 기반에 의해 얻어지는 지식만이 참된 것이라는 주장]이 되었다”(181).

 

이런 딜타이의 철학에 근거한 성인이 된 세상이해와 바르트의 종교적 선험성을 극복하려했던 신학적 이해가 그의 경건과 저항의 영성인 비종교적 기독교(Religionless Christianity)’타인을 위한 기독교(Being there for others)’를 만들어 내었다. 이 본회퍼의 이 두 용어 안에 들어있는 경건과 저항의 영성은 (종교적 선험성을 비판했지만 아무런 방법을 말하지 못한) 바르트와 달리,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인 예수의 길을 보여주는 현장의 영성이다.

 

그의 경건과 저항의 영성을 나타내는 비종교적 기독교(Religionless Christianity)'타인을 위한 기독교(Being there for others)’는 무엇인가? 딜타이(Dilthey)의 철학적 개념에 영향을 받은 본회퍼는 기존의 종교의 개념 - 라인홀트 지베르크(Reinhold Seeberg)나 칸트(Kant)의 선험적 개념, 즉 임시방편의 신 또는 복을 주는 신 - 을 거부하고 삶의 매 현장(정치, 입법, 자연 과학등)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따르는 비종교적 행위를 경건이라고 불렀다. 즉 기존의 종교 개념은 끝이 났고 삶으로 종교개념’ – 비종교적 개념 - 만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우리는 정말 비종교의 시대로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은 정말 종교적이기를 거부한다그리스도는 더 이상 종교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교회의 주인이 아닌 이 세상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153-4).

 

예수님은 우리를 새로운 종교를 하자고 부르신 것이 아니다그분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세상 안의) 새 삶으로 초대하기 위해서이다(199).

 

 

그래서 그는 인간들이 위험에 빠지는 순간 혹은 자기가 자기 꾀를 가지고 고전하다가 안 되면 다급하게, 슈퍼맨을 부르듯, 부르는 하나님을 거부한다. 그에게 이것은 신앙도 경건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전능함이 아닌 하나님의 약함과 고통 중에 계시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진정한 경건이라고 설명한다.

 

종교적인 인간은 인간의 인식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라든가 (대부분 본인들이 치밀하지 못하거나 자신들이 게을러서 생기는 경우지만)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경험할 때 신을 찾곤 한다. 사실 이런 신은 대부분 기계장치의 신’ (deux ex machina)이다. 인간들은 자기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히거나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일 때만 이런 신을 부른다(154).

 

교회는 인간들 자신들이 해보다가 안 되면 신의 이름을 부르는 삶의 끝자리가 아닌, 삶의 중심에 세워져야 한다(155).

 

마태복음 8장 17절은 그리스도가 그의 전지전능함으로 우리를 돕지 않으시고 그의 약함과 고통으로 우리를 돕고 계심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196).

 

  

이런 기존의 선험적 종교개념을 거부한 본회퍼는 그의 매 삶 속에서 '비종교적' 행보를 걷게된다. 그리고 이런 삶은 고통받는 타인과 함께 있는 행동(프락시스 praxis)에서 구체화된다. 고통을 받는 자들과 함께하는 그의 비종교적 기독교의 경건은 가해자들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다. 본회퍼는 예수님의 경건 역시 세속적 삶에 기반한 타자를 위한 삶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타자를 위한 삶은 기득권들에게는 저항이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반드시 세속적 세상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되고, 이 세상의 무신성(ungodliness)을 어떤 방법을 써서 종교적으로 은폐하거나 신성화해서도 안 된다 (198).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인간의 삶을 송두리채 바꾸는 절대적 변화의 경험이다. 이 예수는 오직 타인을 위해 존재한다는 경험이다(209).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가장 높고 가장 힘이 있고 가장 좋은 이미지로써의 종교적 관계가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예수가 거하는 현장에 참여하는 것을 통한 이웃과 함께하는 실재의 행동안에서 맺어지는 관계이다. 그 하나님은 동방의 제의 종교에서 보이는 것처럼 기괴하거나, 혼돈적이거나, 무서운 야수의 모습도 아닌 그저 타인을 위한 인간으로 계신 분이다. 그분은 그저 이웃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이다(210).

 

 

옥중서간》에 나타난 본회퍼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그저 선험적으로, 추상적으로, 현실도피적으로, 교회 안에만 머물게하는 그런 종교를 거부하는 비종교적 영성을 지니고, 가장 현실적으로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고통주는 자들에게 틀린 것은 틀렸다라고 외칠 수 있는 저항 정신을 지닌 자였다. 박근혜 정부하에서 살아가는 기독인들이 참으로 답답해하고 있다. 이들에게 어떤 숨통을 터줄 수 있을까? 로마서 13장 1절을 들이대며 무조건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하나님의 사람, 본회퍼를 통해 감히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다. 본회퍼의 옥중서간》에 깃든 경건과 저항의 영성이 팍팍한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하지는 않을까?/ 이경희




옥중서간 - 디트리트본회퍼

저자
에버하르트 베트게 지음
출판사
대한기독교서회 | 1995-08-15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잘못된 국가 권력과 신앙인의 양심이 충돌했을 때 목숨을 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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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글에서 인용하는 《옥중서간》본문은 Dietrich Bonhoeffer,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 ed. Eberhard Bethge (SCM Press, 1967)의 본문을 필자가 번역한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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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성경 읽기

조각이나 그림을 감상할 때에 그 작품의 각 부분을 곰곰이 살펴본다면,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을 때) 이 놀라운 광경 (지붕을 뚫고 내려진 중풍병자를 고치신 일) 앞에 잠시 멈추어 서서 (너의 이성을 동원해서) 경건한 호기심을 가지고 내용을 세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 제임스 트래이시(James Tracy), "인문주의자들의 성서 이해: 영혼의 양식," 《기독교 영성 II》, 질라이트 편집(Jill Raitt), 엄성옥 이후정 공역 (은성), 386.


요즘 십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제자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만나고 있다. 총 세 단계의 훈련 과정인데 첫 번째 과정을 수료한 친구들과 이제 막 두 번째 과정으로 들어왔다. 대견하고 기특하다. 공부하고 일하는 시간을 쪼개서 렉시오 디비나, 말씀 암송, 자기 관리표 작성 등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청년들을 보며 늘 도전받는다.

오늘이 두 번째 과정(14)에 들어가는 첫 날이다. 이런 저런 숙제들을 설명하다 함석헌 선생님의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몇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말에 청년들은 아연실색이다. 그 착한 청년들이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기세다. 한 술 더 떠, 이게 성경과 관련된 책이냐며 앙탈을 떤다. 대박…!


왜 교회에서 인문학은 치외법권인가?   

중고등학교 시간에 배워 익숙한 르네상스의 아버지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of Rotterdam, 1466-1536)는 사실 인문학자이기 이전에 가톨릭 사제이며 복음적 영성가였다. 그는 당시에 팽배했던 금욕주의적 기독교보다 인문주의의 접근이 더 세상에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그를 포함한 인문주의자들은 지식을 지적인 것들의 영역에 한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식이란 하나님을 더 알고자하는 인간의 마음을 꿰뚫는 의지를 형성하는 전인적 경험(Holistic Experience)이라 이해했다. 그들에게 인문학은 절대 하나님을 등지기 위함이 아닌 하나님 등에 업혀 못 보았고 못 들었던 지성의 세계를 열어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고자 함이었다.


위에서 트레이시가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 '이것은 몇 년도 조각된 누구의 작품입니다. 다음 작품은요……'라는 설명으로 조각품 감상을 급하게 훑듯 성경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각품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이곳저곳 뜯어보며 조각가와 대화하듯 경건한 호기심으로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이성의 잠자던 미세신경까지 깨워 본문에 드러나지 않은 행간에 숨겨진 하나님을 읽어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에 경제학, 미술사, 정치학, 건축학, 역사학 등의 인문학은 성경이 꽁꽁 싸맨 그만의 맨살을 볼 수 있는 좋은 도구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석헌 선생의 그 책을 난감해하던 나의 청년들이 시간이 지난 후 인문학을 통한 하나님과의 전인적 경험을 기뻐할 날이 곧 오리라 믿는다. 나도 그러했기에 그들이 더욱 기대가 된다. / 이경희



기독교 영성 2

저자
질라이트 외편 지음
출판사
은성 | 1999-03-01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세계 기독교 영성 시리즈. 중세시대와 종교개혁기의 영성, 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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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 Spirituality Vol. 2: High Middle & Reformation

저자
Bernard McGinn, Jill Raitt, John Meyendorff 지음
출판사
Crossroad Publishing Company | 1989-09-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A multivolume series with more 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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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등을 밝히는 사람들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와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 <사막교부들의 금언집>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신 분이나 제가 언급한 것 외의 다른 한국어 번역본들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링크에 게시된 이강학 교수님의 글을 참조하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강학 목사님은 두란노와 분도출판사의 번역본을 추천하시네요.^^

    http://cafe.daum.net/spiritus/cDyN/70?docid=1KV3mcDyN7020120402093840

    BlogIcon 바람연필 2014.02.04 04:39 신고

2013년 8월의 추천 고전

장명등을 밝히는 사람들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와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시간을 '때우기 위해' 교회 북까페의 책장을 기웃거리다가 반가운 제목을 발견했다. 이전에 어디선가 광고를 보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인데, 이곳 태평양 바다 건너편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은 평소 좋아하는 작가이고, 지리산도 스무 살 때 무거운 배낭 위에 텐트까지 얹어서 기다시피 올랐던 '지리산 등반대'의 초록빛 추억이 깃든 산이다. 게다가 평소 제법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교'에 관한 글이라 책 제목을 보는데 군침이 막 돌았다. 그러나 책장을 몇 장 넘기지 않아도 이 책이 나의 예상과 달리 '교육'에 관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발견은 나에게 실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인터넷에서 찾아본 출판사의 소개글처럼, 이 책은 "지리산과 섬진강 주변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책으로 묶여지기 전에 <경향신문>에 약 9개월 동안 연재되었던 글이며, 책으로 출간된 이후에도 <MBC 스페셜>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방영되었다고 한다(2011년 3월 4일).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이야기 속에 나온 사람들의 집이나, 이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지리산학교'를 찾는 방문객이 많다고 하니 가히 세간에서 화제가 되었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제서야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고 앉아 있으니, "쯧쯧!" 수 년 동안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런 '무지'와 지금의 '뒷북'에 대한 핑계가 될까? 


      어쨌든, 이 책은 다 '먹어 치우는' 데에 하루가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이 책이 참 '맛있는' 이유는 먼저 이 책의 등장인물이 영위하고 있는 지리산 산골마을과 섬진강변에서의 삶이 세속적인 도시 생활과는 다른 신선한 충격과 재미를 던져 주기 때문이다. 이들이 도시를 떠나 지리산으로 온 이유는 각각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세상에서의 성공이나 부를 욕망하는 삶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사람, 생명, 평화를 사랑하는 삶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삶을 사는 데에 많은 돈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적게 벌고, 적게 쓴다. '최 도사'라는 인물은 일 년에 몇 달 시내의 마트에서 주차 관리 요원으로 일해서 번 '연봉 200만원'으로 일 년을 충분히 산다. '낙장불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원규 시인은 방문객들을 위해서 자신이 사는 집을 통째로 비워주기도 한다. 공지영 작가의 손을 거쳐 맛깔나게 쓰여진 이들의 이야기는 행복을 찾기 위해 유형, 무형의 것들을 자꾸만 소유하려고 발버둥치는 도시인들에게 참된 행복은 오히려 소유가 아니라 욕심을 비우고 생명과 사람, 평화를 사랑하는 삶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이야기가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인물들이 취한 의미있는 '방향 전환'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처음부터 지리산에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들이 아니라, 다른 도시 사람들과 비슷한 삶을 살다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어떤 계기로 인해 지리산 산자락과 섬진강변으로 옮겨간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사업에 실패해서, 어떤 이는 결혼 생활에 실패해서, 어떤 이는 보다 의미있는 삶을 찾아 지리산으로 향했다. 모든 사람들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은 각각의 인생에서 어느 순간 중대한 '방향 전환'을 해야할 때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어디에서 살 것인지와 같은 '장소'의 문제는 나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와 직결된다. 내 나이 올해 마흔. 평균 팔 십 년을 산다고 생각했을 때 산술적으로는 인생의 반환점 언저리에 서 있다. 지리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조만간 있을) 커다란 인생의 방향 전환을 앞두고 내가 누구인지, 그래서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나에게 신선하고도 가치있는 질문들을 던져 준다.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이 책에 나오는 지리산 사람들은 도시를 떠났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떠나 보내지 않았다. 소문을 들은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그들의 집 대문을 넘나들고 있고, 특히 신문 연재와 책을 통해서 유명세를 탄 이후에는 이들의 이야기가 더욱 많은 이들의 입과 인터넷 사이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에 이 '지리산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이 책의 영향력은 앞으로 당분간은 지속되리라 본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삶은 이 책 속의 함태식 옹에 대한 글로 요약될 수 있다. 함태식 옹은 1972년 나이 마흔에 지리산에 입산하여 노고단 산장을 열고 거의 40년 동안 피아골 대피소를 지키며 많은 조난객들을 구한 인물이다. 


"노고단 산장에 처음 가서 내가 호롱불을 만들어 현관에 달아놨어요. 근데 작은 호롱불빛이 말이야. 멀리 화엄사 입구에서도 보여. 등불이라는 게 그렇더라고 어둠 속에서 헤매던 사람들이 그걸 보고 찾아오는 거야. 길게 밝혀 준다고 그걸 장명등이라고 하지."


그의 말대로 빛이라는 게 그렇구나 갑자기 우리는 숙연해졌다. 작은 일도 지극해지면 생명을 살리는 등불이 되는구나. 장명등, 그것이 그의 삶이었다.


- 공지영,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서울: 오픈하우스, 2010), 57-58.


장명등(燈), 어두운 밤 멀리까지 빛을 비추는 등불처럼, 기이하면서도 소박하고 진실된 지리산 사람들의 삶은 한 때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고, 도시 생활이 커다란 기계가 물질을 생산하기 위해 굉음을 울리며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 속의 삶 같은 한, 또 도시가 그 물질들을 소비함으로써 욕구를 충족하려는 소비자들로 가득 찬 백화점 같은 한, 이들의 이야기는 길게 한 줄기 빛을 비춰주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장명등을 밝히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당연히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로마제국에서의 기독교 공인(313년) 이후 세속화되고 타락해진 기독교 신앙을 벗어나 마음의 순전함(purity of heart)을 얻기 위해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지의 사막으로 들어간 4~5세기의 '사막의 수도자들'(Desert Fathers and Mothers)이다. 공지영 작가도 그녀의 책에서 지리산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사막 교부들이 떠오른다고 쓰고 있다. 그만큼 지리산 사람들과 사막의 수도자들은 여러 가지 비슷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먼저 이들은 모두가 순수성을 잃고 점점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번잡한 도시 생활로부터 벗어나, 지리산/사막에서 단순하고 진실한 삶을 살며 그 속에서 참된 자아의 발견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더불어 이들이 물질을 소유하는 것보다 비움과 가치 추구를 통해서 행복을 발견하려 한다는 점, 이들이 도시를 떠났지만 도시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배우기 위해 몰려 온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삶이 하나의 '장명등'이라는 점들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공통점이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천오백여 년이라는 시간의 간격보다도 더 큰 차이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둘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도 아니고 바람직하지도 못하다. 하지만 지리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옛날 사막 수도자들의 삶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만 짚고 이제 본격적으로 사막 수도자들의 이야기로 넘어 가려고 한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은 주로 4~5세기에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의 사막에 살던 수도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이집트의 안토니우스(Antonius of Egypt)를 시작으로 많은 이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훈련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사막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주로 평신도들이었으며, 그 중에는 글을 알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어떤 이들은 혼자 동굴이나 무덤 등지에서 기거하는 은둔자(hermit/anchorite)로 살기도 하였고, 삼삼오오 모여 살기도 했으며, 경우에 따라 대규모의 사람들이 모여 공동생활(cenobite)을 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가장 활발했을 때는 '사막을 도시로 만들었다'고 묘사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이집트의 사막에서 수도 생활에 자신을 내던졌다.


      당시 사막에서는 많은 경우 제자들이 스승과 함께 거주하며 수도 생활을 배워 나갔는데, 그들의 배움과 훈련 방법은 스승의 강론을 듣고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스승의 삶을 관찰하고 따라서 실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씩 외부에서 찾아온 방문자들이나 제자들이 스승에게 질문하거나 "아버지여(abba, 여성의 경우는 amma), 한 말씀만 하소서"라고 가르침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 책에 수집된 이야기들은 이와 같은 경우 영적 스승들이 남긴 짧은 가르침들 또는 이들과 관련된 짧은 일화들이다. 이 가르침들과 일화들은 구전과 기억을 통해서 전해져 오다 첫 세대의 위대한 영적 스승들을 알지 못하는 다음 세대의 수도자들을 위해 그 일부가 기록으로 남겨졌다. 


      이 사막의 수도자들의 이야기들이 지금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며 전해져 내려오는 이유는, 이들의 가르침이 어떻게 하면 금욕생활 또는 수도생활을 훌륭하게 수행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기 위하여 금식과 철야, 그리고 여러가지 고행을 하기도 하였지만 고행 그 자체가 그들의 관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혜로운 스승들은 지나친 고행은 수도자를 교만하게 하여 수도생활의 본질을 흐릴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어떤 형제가 한 은둔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금식을 해야 합니까, 육체노동을 해야 합니까? 철야를 해야 합니까, 선행을 베풀어야 합니까?"


은둔자가 대답했다. "분별력을 가지면 이 모든 것들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소. 많은 사람들이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고 있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까닭은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오. 오랜 금식으로 입에서 가시가 돋고, 말씀을 다 배워서 알고, 시편을 암송한다 해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가 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겸손과 사랑이오." 


- 사막 교부들 지음, 배응준 옮김, 《깨달음》(The Desert Fathers: Sayings of the Early Christian Monks), (서울: 규장, 2006), 199. 


      그렇다고 해서 사막의 수도자들이 늘 소위 '영적인' 이야기, 또는 실제 생활과는 관련이 없는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를 하고 산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일화가 있다. 한 은둔자가 포에멘(Poemen)의 명성을 듣고 그를 만나러 왔다. 포에멘은 기뻐하며 그를 자신의 움막으로 맞아 들였고, 두 사람이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그 은둔자가 "성경과 영적인 것들과 하늘에 속한 것들"에 대하여 말하였으나 포에멘은 다른 곳으로 얼굴을 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당황한 은둔자가 밖으로 나와서 포에멘의 제자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그 제자가 포에멘에게 들어가 그 이유를 물었다. 포에멘의 대답은 이러했다.


나는 아래에 속한 사람이라 땅의 것을 말하는데, 그 분은 위에 속한 사람이라 하늘의 것들만 이야기하지 않소? 만일 그 사람이 영혼의 격정에 대해 말했다면 나도 기꺼이 대답했을 것이오. 하지만 그는 영적인 것들만 말했소. 나는 그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오.

-《깨달음》, 173.

 

이 대답을 전해 들은 은둔자가 다시 포에멘에게로 들어가 자신이 씨름하고 있는 정욕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고, 그는 포에멘의 대답을 듣고 깊은 감화를 받고 돌아갔다. 이 일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사막 교부들의 이야기에는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과 인간적인 욕망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 책은 사막 수도자들의 옛날 이야기일 뿐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 인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난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이 책을 다시 읽다가 얼굴이 자주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약 1600여 년 전의 이야기들이 최근의 나의 어리석고 악한 마음과 행동들을 환하게 들추어 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이 책이야 말로 기독교 영성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속에 기록된 이야기들이 모든 시공간을 초월해서 적용되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법칙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 기록된 이야기들은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특정한 인물들에게 주어진 가르침들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가르침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 던지는 나쁜 생각들에 주의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어떤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의지를 따르면서 그것이 악마들이 공격이라고 핑계대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쭉 읽어 내려가기보다는 중간 중간에 쉬어가며 충분히 묵상하고, 가능하면 주위의 벗들과 깨달은 내용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러할 때 책 속의 내용들을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그 옛날 사막의 수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할 가르침으로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막의 수도자들의 이야기들은 여러 문헌들을 통해서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인 가르침들을 담고 있는 것은 구전되는 이야기들을 압바(암마)들의 이름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모은 편집본(Alphabetical Series)과 주제별로 모은 편집본(Systematic Series) 이 두 가지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편집본들에서 이야기들을 추출하여 하나의 책으로 엮은 라틴어 선집 Verba Seniorum도 존재한다. 이 책의 영향력을 증언하듯이 한국어로도 여러 가지 번역이 나와 있다. 그러나 현재 필자가 해외에 거주하면서 이 모든 번역들을 두루 검토하고 좋은 번역을 추천할 수 없는 점을 독자들께 양해를 구하고 싶다. 다만 현재 우리집 책꽂이에 꽂혀 있는 한국어 번역본은 규장에서 《깨달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것인데, 이 책은 펭귄 클래식스(Penguin Classics) 시리즈의 The Desert Fathers: Sayings of the Early Christian Monks 이라는 영어 번역본을 다시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이 영어본은 베네딕타 워드(Benedicta Ward)가 Verba Seniorum을 대본으로 옮긴 것으로 매우 공신력 있는 텍스트이다. 하지만 규장의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영어본에 있는 워드의 뛰어난 서문은 물론, 본문도 중간 중간 적지 않게 생략되어 있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장(chapter) 순서도 뒤바뀌었는데 매우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시원한 활자와 삽화가 이정선의 영감 있는 그림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 잡고 읽고 싶게 만들며, 중간중간 묵상할 수 있는 휴지(止)도 다는 점에서 위로를 삼는다. 


       한국은 아직 무더위가 한창이지만, 이곳 버클리는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지리산 단풍만큼은 아니지만, 오늘 아침 산책길에 본 나무에 벌써 옅은 빨간 물이 흠뻑 들었다. 공지영의 책에 나오는 지리산 사람들도 그렇고 사막의 수도자들도 모두가 같은 색깔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아니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소박하면서도 참된 삶을 추구하고, 창조주가 디자인한 대로 각각 다양한 색깔의 잎사귀를 내는 사람들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번 가을, 영성 고전 독서를 통해서 아름다운 삶, 순전한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기도하고, 실천하자. 그리하여 자신과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빛깔로 삶이라는 잎들을 물들여 가자. 우리 모두가 희망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어두운 세상에서 각각 단풍빛의 장명등을 밝히는 사람이 되자.


지리산은 그 모든 골짜기 구석구석마다 다른 빛깔로 각기 다른 사람들을 품고 있으니까 말이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26.

/ 권혁일



지리산 행복학교

저자
공지영 지음
출판사
오픈하우스 | 2013-11-0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소망이 두려움을 넘어설 때 우리는 지리산 행복학교로 간다.어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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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저자
사막교부들 지음
출판사
규장 | 2006-10-30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진정한 깨우침을 주는 참스승, 사막의 은자들! 사막 은자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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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저자
두란노아카데미 편집부 지음
출판사
두란노아카데미 | 2011-02-01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사막 교부들의 단편적인 가르침을 모아 놓은 모음집으로, 4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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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교부들의 금언집

저자
뻬라지오와 요한 지음
출판사
분도출판사 | 1999-08-14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가톨릭 신앙생활 교양서.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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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sert Fathers: Sayings of the Early Christian Monks (Paperback)

저자
Ward, Benedicta (EDT) 지음
출판사
Penguin USA | 2003-08-01 출간
카테고리
인문/사회
책소개
The desert fathers provided the 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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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dom of the Desert

저자
Merton, Thomas (Author) 지음
출판사
New Directions | 1970-06-01 출간
카테고리
인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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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isdom of the Desert was one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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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연필

은둔 그리고 참여 (안토니의 생애)

2013년 6월의 추천고전


안토니의 생애 (The Life of Antony)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영성 고전을 소개하고 싶다안토니의 생애 (The Life of Antony)》는 수도원 운동의 창시자라고 불리우는 이집트의 안토니우스(Antonius of Egypt 또는 Ant(h)ony the Great)를 소개한 책이다. 비록 이 책은 약 1700여년 전에 쓰여졌지만, 순전한 삶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애독되어 왔고, 지금도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한 번 쯤 곱씹고 고민해볼 만한 여러 가지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예를 들면, 안토니우스의 가르침과 설교의 주요 주제들은 무엇인가? 저자 아타나시우스는 안토니우스를 통해 당시 아리우스주의자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안토니우스의 부르심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안토니우스의 교회론은 오늘날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오늘날 개신교는 안토니우스의 수도 생활, 은둔 생활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등이다. 

 


·         시대적 배경


      이 책의 저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는 기독교 초기, 변증과 이단 논쟁을 통해서 기독교 교리가 확정되어 가던 격동기를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큰 영향을 끼쳤던 밀란 칙령(The Edict of Milan, 313)과 니케아 회의(The Nicaea Council, 325)를 직접 경험하였다. 무엇보다 신플라톤주의 철학에 기반을 둔 아리우스주의자들과의 설전은 그를 평생 기독론과 삼위일체론의 투사로 기억되게 만들었다. 그는 아리우스를 경계하며 안토니우스의 입을 빌어 이렇게 권면한다.

 

안토니가 자신들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고 잘못된 주장을 아리우스파가 펼쳤을 때, 그는 흥분하며 그들에게 분노했다. “그러므로 그분(예수님)이 존재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분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자 말씀이신 분을 피조물이라고 말하는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보다는 그분이 만드신 것을 더 경배하며 섬기는 ( 1:25) 이방인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69).

 

믿음의 자녀들이여, 낙심하지 마시오. …… 여러분 자신을 아리우스파와 상대함을 더럽히지 마시오. 그들의 가르침은 사도들에게서 온 것이 아니며 마귀들과 그들의 아버지인 사탄에게서 온 것이오. 정말로 사탄은 생명이 없고 지각이 없으며 무분별한 노새들처럼 올바르게 이해하지도 못한다오.” (82).

 


·         안토니우스의 삶


      그렇다면 안토니우스는 누구인가? 그는 251년 이집트의 작은 마을 코마(Coma)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무 살쯤에 부모를 여의고 모든 재산을 상속 받는다. 그러나 그에게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순수한 신앙을 따르려는 열정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 중에 네가 완전하려거든 가서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누라라는 말씀을 듣고 문자적으로 순종하여 그의 재산을 처분하고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살던 마을 근처에서 금욕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다양한 금욕주의자들을 만나보고 그런 삶을 공부했으며 서로의 가치를 배웠다. 그 후, 그는 그의 거처를 마을 근처의 무덤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수많은 야수의 모양을 한 악령들과의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15년후, 그는 완전한 고독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부터 그를 단절시켰다. 나일강 동쪽 피스피르(Pispir)라는 곳에 자리를 잡은 안토니우스는 거의 20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은둔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나일강과 홍해 사이의 한 곳을 정하여 자신을 격리시켰다. 그러나 안토니우스는 완전한 은둔이 아닌 필요에 따라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며 찾아오는 이들을 만나거나 도시로 나가는 현실 참여적인 수도의 삶을 45년간 살다가 105세에 그의 생을 마감하였다.  

 


·         은둔인가, 참여인가?


《안토니의 생애》를 소개하면서 은둔인가 참여인가라는 화두는 참으로 아이들 말로- 생뚱맞다. 왜냐하면 그는 은둔과 금욕의 대명사이지, 현실 참여의 영성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우리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특히 거꾸로만 향하는 정치인들의 작태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는 그가 철저한 참여의 영성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번은 수도자들이 그에게 간청하기를, 잠시 동안만이라도 그들에게 와서 그들의 생활을 감독해 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수도자들과 함께 길을 떠났으며, 낙타 한 마리가 그들의 빵과 물을 운반하였다. 그 사막은 온통 건조해서 그의 암자가 있는 산속을 제외하고는 물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거기에서 물을 걸어왔다. 바야흐로 숨 막힐 듯 한 열기가 온 땅에 가득 차고 물마저 도중에 떨어졌으므로, 그들 모두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들은 여러 곳으로 물을 찾아 헤매었지만 허사였고, 더 이상 길을 걸을 수 없어서 땅 위에 드러누었으며 삶을 포기한 채 낙타를 풀어주었다. 늙은 안토니는 모두가 위험에 처한 것을 보자 몹시 괴로워하고 깊이 탄식하면서 그들을 떠나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갔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며 기도를 드렸다. 즉시 주님은 그가 기도하는 곳에서 물이 펑펑 쏟아지게 하셨다. (54)

 

며칠 후 그는 다시 산 속으로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방문했고, 그 중에서도 고통 받는 사람들은 그에게 담대히 다가갔다. 찾아온 모든 수도자들을 위해서 그는 어김없이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55)

 

귀족 한 사람도 마귀에게 시달림을 당하며 그에게 왔다. 그 마귀는 너무 흉악해서 그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이 안토니에게 가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의 상태는 너무나 심각해서 자신의 배설물까지 삼킬 정도였다. 그를 데려온 사람들은 안토니에게 그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애원했다. 안토니는 그 젊은이를 측은하게 여기고 기도를 드렸으며, 온 밤을 그와 함께 새웠다. (64)

 

             그는 죽어가는 자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고 (54), 방문하는 자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었고 (55), 또한 귀신들린 자를 긍휼히 여겨 그와 온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64). 그의 삶은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처럼 은둔의 삶 만이 아니었다. 그는 그 은둔이 무엇을 위함인지 철저하게 알았기에 그의 삶은 아픈 자들과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한 현실 참여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사회운동가들처럼 참여만을 외치는 영성가가 아니었다. 그는 우리의 참여는 반드시 고독에서 만나는 하나님과의 경험에 기초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언젠가 그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로부터 또 이런 간청을 받게 되었다. 군대의 지휘관 한사람이 많은 전령사를 보내 그에게 와줄 것을 청했다. 그는 가서 구원에 대한 몇 마디 말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충고를 전한 후, 서둘러 돌아가려고 했다. 공작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그에게 머물러 달라고 간청했으나 그는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공손하게 해명하며, 그 공작을 설득했다.

물고기가 마른 땅 위에 잠시 나와 있으면 죽게 되듯이 수도자들도 여러분과 함께 머뭇거리며 시간을 보낼 때 수도를 게을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물고기가 바다로 가듯 우리는 산속으로 속히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여러분 사이에 남아 있으면서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85)

 


·         은둔이다 그리고 참여다


      요즘은 정의가 땅에 뭍히고법을 준수하는 자가 냉소와 조소를 받는 시대이다. 이러한 때에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거대한 기득권들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내다 지쳐버려아니 해도 해도 안되는 것을 운명처럼 여겨 버리고 급기야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끼는 듯하다. 국가기관의 권력을 남용하여 선거에 개입하였던 전 국정원장과 국정원 직원들의 잘못은 모른 체하고, 그것에 물을 타기’ 위해 이미 고인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발언 등을 문제 삼는 모습은 세상에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지를 더욱 꺾어버린다. 그래서 많은 이들로 하여금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게만 만들어 간다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안토니의 생애》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가그의 영성은 은둔의 영성인가 참여의 영성인가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부조리 가운데서, 그리고 약한자들이 처절하게 밟히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무엇을 해야하는가


      《안토니의 생애》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참여다! 무엇인 진리인지 고민하지 않는 영성,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은둔이다! 그 참여의 영적 밑동’(영적 뿌리)은 한 발 물러나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안토니의 생애》는 다시 한 번 이 갑갑하고 떠나가고 싶은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자극을 제공한다. 그것은 그가 105세의 삶을 살면서 타인의 삶에 참여했지만 뒤로 물러나 하나님을 만났기에 가능했던 은둔에 뿌리를 둔 참여의 영성이다 / 나무 잎사귀 이경희




성 안토니의 생애

저자
아타나시우스 지음
출판사
은성 | 2009-02-28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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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anasius : The Life of Antony and the Letter to Marcellinus

저자
Gregg, Robert C. 지음
출판사
Paulist | 2010-06-25 출간
카테고리
문학/만화
책소개
Athanasius (c. 295-373) Bishop of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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