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성 생활/수필 한 조각

(41)
초콜릿과 피식웃음 초콜릿과 피식 웃음 며칠 전 어떤 성도 한 분이 당 떨어지는 여름에 힘내시라고 초콜릿 한 통을 주고 가셨습니다. 당 떨어지는 여름을 걱정하는 마음이 작은 손 편지에 배어있었습니다. 비싼 선물은 아니지만 힘들 때마다 하나씩 드시면서 ‘피식 웃음’ 지으라는 편지글에 미안하게도 ‘함박웃음’이 지어졌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에게 크고 특별한 것을 주고 싶습니다. 특별한 시간, 특별한 이벤트, 특별한 선물을 주어야 사랑인 시대니까요. 그러나 사랑이 없다 싶어 서운했던 순간들을 돌이키면 대개 작은 순간들입니다. 작은 말 한 마디, 작은 눈빛 한 번, 작은 숨 한 호흡이 마음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특별한 것을 준비하는 노동같은 애씀보다 사랑하는 이에게 작은 순간을, 작은 눈빛을, 작은 숨을 보내고 싶습니다. 인생..
병상 묵상 2 : 반복되는 충실함이 생명을 일군다. 병상묵상 2. 반복되는 충실함이 생명을 일군다 아버지는 모두 6번의 항암주사를 맞으셨다. 어떤 회 차에는 가려움증이, 어떤 회 차에는 부종이, 어떤 회 차에는 탈모와 극심한 통증이 아버지를 괴롭혔다. 소화불량과 배변의 어려움은 계속되는 고통이었다. 처음에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하시고 힘을 냈셨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운이 빠지고 연약해지셨다. 일반적으로 항암주사를 맞고 나면 첫 주는 아주 힘들지만 둘째 주가 지나면서 회복되어 3주가 지나면 다시 항암을 맞을 정도의 상태가 된다. 그런데 차수가 진행될수록 몸의 회복력이 저하되었다. 갈수록 입맛이 없으니 음식을 먹기도 힘들고, 소화가 잘 안 되니 음식도 맛이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항암주사를 맞은 후 병원에 가서 하는 정기점검에서 항암일정을 연기해야 ..
한 사람 한 사람 새벽 4시. 어김없이 알람이 울리면 습관적으로 눈이 떠진다. 잠시 동안 잠자리에 누워 씨름하다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 후다닥 옷을 입고 교회로 향한다. 교회에 도착하면 4시 15분. 두 시간이 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난 말씀을 준비한다. 하루 동안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만나를 섭취하는 영의 식사 시간. 그런데 6시가 가까울수록 만나를 통한 기쁨을 뒤로 하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마음 속 깊은 구석에서부터 꿈틀대기 시작한다. ‘오늘은 혹시 못 오시지 않을까? 오늘도 또 오실까?’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에서 성도를 기다리는 한편의 마음과 성도가 안 오기를 바라는 또 한편의 마음이 치열하게 대립한다. 나의 기대를 비웃기나 하듯, 6시가 되면 한 영혼이 계단을 올라온다. 오늘도 늘 그렇게 어김없이 찾아온 한..
병상 묵상1. 함께 하는 것이 사랑이다. 병상 묵상 1. 함께 하는 것이 사랑이다. 아버지가 몇 개월의 투병생활을 마치셨다. 아직 몸을 추슬러야 하는 과정이 남았지만, 두 종류의 암을 이겨내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가슴 벅차다. 아버지는 병마와 싸워 이기신 것만이 아니라 투병과정을 통해 내게 많은 선물을 주셨다. 아버지가 혈액암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지난 12월은 가족 모두에게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었다. 여러 번 고향으로 가서 담당의와 상의하면서 6차례 이상의 항암치료를 본가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어려움은 아버지의 간병이었다. 항암치료는 3~4일의 입원이면 가능하지만, 항암을 마치고 돌아온 환자가 다시 항암할 때까지 돌보는 3주 정도의 기간을 어떻게 지내실지가 고민이었다. 건강도 좋지 않은 어머니가 간병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큰 짐이 되었다...
내가 보는 아름다운 것들 Point Reyes By King of Hearts - Own work, CC BY-SA 4.0, Link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 해안을 따라 차로 한 시간 정도 가면 포인트레이즈(Point Reyes)라는 곳에 당도할 수 있습니다. 넓고 푸른 초지를 한참 동안 지나 차에서 내려 바닷가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면 육지끝 바위에 예쁘장하게 서 있는 등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망망대해를 바라다보는 아담한 등대의 자태를 눈에 담노라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 십상입니다. 나아가 그곳 오른편에 펼쳐진 끝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길게 뻗은 원시 해안을 보게 되면 그 광활함에 절로 입이 벌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갈 때마다 저의 시선을 가장 크게 사로잡는 광경은 등대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나..
아름다움이 부른다 아름다움이 부른다 시인 박목월 선생님의 시 중에 「개안」(開眼)이라는 시가 있다. 나이 60에 겨우꽃을 꽃으로 볼 수 있는눈이 열렸다. 신이 지으신 오묘한 그것을 그것으로볼 수 있는흐리지 않는 눈어설픈 나의 주관적인 감정으로채색하지 않고있는 그대로의 꽃불꽃을 불꽃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렸다.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충만하고 풍부하다. 신이 지으신있는 그것을 그대로 볼 수 있는지복한 눈이제 내가무엇을 노래하랴. 신의 옆자리로 살며시다가가아름답습니다. 감탄할 뿐신이 빚은 술잔에축배의 술을 따를 뿐. 시인은 술에 취했던 것 같다. ‘새 술’(행 2:13)에. 그렇기에 저리 ‘방언’을 쏟아 놓았을 터다. 산문 일색 세계에서 시는 새로운 언어, 곧 방언이다. 시인은 꽃을 ‘불꽃’이라고 명명한다. 아니 호명(呼名)..
거룩한 상처 사순절, 주님의 성흔을 묵상하는 때입니다. 성흔(stigmata)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난 상처를 말하지요. 예로부터 주님을 깊이 사랑하고 따르기 원하는 사람들은 그 성흔을 묵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수의 상처까지도 닮기 원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stigmata)을 지니고 있노라”(갈6:17)고 말했고, 예수를 닮기를 추구했던 성 프란체스코(Fransis of Assisi: 1181-1226)는 세상을 떠나기 두 해 전에 베르나 산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중에 몸에 오상(五傷)을 얻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들이 실제로 육체에 성흔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두 성인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고난에 이..
창구멍, 겨울의 숨구멍 창구멍, 겨울의 숨구멍 “숨구멍이 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답답한 상태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됨을 비유한 표현이지요. 요즘처럼 사회적으로 어려울 때뿐만이 아니라, 계절적으로 찬바람이 매서운 겨울에는 문을 꼭꼭 닫아 놓고 지내기 때문에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갑갑한 상황 속에서 ‘숨구멍이 트이게’ 하는 나름의 방법이 있나요? 오는 2월 16일은 윤동주 시인(1917-1945)이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서러운 죽음을 맞이한 지 72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12월 30일은 우리에게 언제나 청년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윤동주 시인의 백 번째 생일입니다. 그는 〈서시〉나 〈십자가〉와 같은 잘 알려진 서정시 외에도 많은 동시를 지었는데요, 그 중에 〈창구멍〉이라는 작품을 함께 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