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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믿는다는 것 (비트겐슈타인) 부활을 믿는 것은 사랑이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1889-1951), Culture and Value: A Selection from the Posthumous Remains, trans. Peter Wintch (Malden, MA: Blackwell, 1998), 39. "부활은 현 세계 안에서 일어난 매우 독특한 사건이 아니다. (비록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만……) 부활은 원칙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탄생하게 되는 새로운 창조 세계의 결정적 사건이다. 우리가 이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는 것은 둘째 치고 그것을 잠깐 보기만 하려해도 우리에게는 다른 종류의 앎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참여시키는 앎, 객관적 자세로 연구하는 유사 과학 연구의 냉정..
뛰어남이 아닌 섬김 (디트리히 본회퍼) 성도의 모임에는 뛰어난 인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와 형제들을 참으로 섬기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필요하면서도 없는 것은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신도의 공동생활》.공동체로 더불어 살아보겠다고 몇 분의 목사님들이랑 모임도 하고 여러 곳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모임을 하는 동안 서로의 색깔이 분명히 드러났고, 그러던 중에 한 분이 아프시고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자연스레 모임이 중단된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 모임을 이끌 좀 더 신망있고 지도력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달라졌을까?' 생각해본적이 있습니다. 이런 질문은 제게만 있지는 않습니다. 복잡한 사회문제, 침체되는 경제, 줄어드는 교회들, 반복되는 사회양극화와 ..
참된 긍휼을 품은 사람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하지만 형제애에서 우러나는 긍휼을 품은 이는 그 슬픔의 원인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랄 것입니다. -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of Hippo: 354-430) 《고백록》, Book III, ii (3) 카르타고(Carthage)에서 유학하던 젊은 시절, 아우구스티누스는 극장에서 비극을 즐겨 보았다. 그것은 그가 비극 관람을 통해 얻는 '카타르시스(catharsis)' 그 자체를 즐겼기 때문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들이 자신은 슬픈 일을 당하기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이들의 불행을 보는 것을 즐기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기 좋아하는 것은 참된 긍휼(misericordia)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참된 긍휼은 불쌍한 사람과 함께 슬퍼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슬픔의 원인이 사라지기..
세리의 고백 (아빌라의 테레사)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자기를 못 믿고 두려워하는 생각이 더 큰 법입니다. 받는 은혜가 크고 보면 자기 자신의 가엾은 모습이 돋보이고, 자기의 지은 죄가 더욱 커 보이는 것, 그러기에 저 세리와 같이(누가복음 18장 13절) 감히 눈을 쳐들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c. 1515-1582), 《영혼의 성(The Interior Castle)》, 일곱 번째 성채, 3장. 14절. 부활절의 노래는 너무나 부르기 쉽고 그날의 축제는 이내 '나'의 것이 되고 말때가 많다. 사순절의 기나긴 어둔 밤은 지루했고 참기 힘들었으며, 남의 것 아니면 저 예수의 것으로 생각해버리고 싶은 유혹은 매해마다 되풀이 된다. 그러나 십자가와 그 길에서 멀어질수록 부활의 기쁨은..
3. 미스타고지(mystagogy): 신비에 눈뜨기 미스타고지(mystagogy): 신비에 눈뜨기 영혼의 눈에 끼었던 / 무명(無明)의 백태가 벗어지며 /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萬有一切)가 /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 이적(異蹟)에나 접하듯 / 새삼 놀라웁고 // 창밖 울타리 한구석 / 새로 피는 개나리꽃도 / 부활의 시범을 보듯 / 사뭇 황홀합니다. // 창창한 우주, 허막(虛莫)의 바다에 / 모래알보다도 작은 내가 / 말씀의 신령한 그 은혜로 / 이렇게 오물거리고 있음을 / 상상도 아니요, 상징도 아닌 / 실상(實相)으로 깨닫습니다. - 구상, .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고 했다.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긴다. 그런데 믿음은 '눈'(目)이다.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주는 눈이..
성경 필사를 통한 영성 훈련 올해 사순절을 시작하며 교회 성도들과 함께 영성 훈련으로서 전교인 성경필사를 시작했습니다. 성경 필사를 하기 전 몇 주에 걸쳐서 설교를 통해 성경 필사의 역사, 필사 할 때의 규율, 그 필사를 통해 전해 내려져 온 하나님의 말씀들을 먼저 나누면서 이것이 단지 '쓰고 모방'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전달하는 사명'이었다는 것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도원을 중심으로 필사를 통해 전해 내려왔던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손을 통해 전해 내려왔지만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거의 오류가 없이 전해 내려올 수 있었나를 함께 생각해 보았답니다. 한 글자라도 정확히 지키고자 했던 그런 엄격함과 정직함이 결국 필사자의 기본 자세라는 것이 성도님들의 입술을 통해 자연스럽게 고백되어졌습니다. "말..
봄 안으로 (C. S. 루이스) 아름다움을 '보는 것만도 대단한 혜택이지만 우리는 그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무언가를 원합니다. 우리가 보는 아름다움과 연합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고, 그것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고, 그 안에 잠기고, 그 일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C. S. 루이스, 《영광의 무게》 (홍종락 옮김, 홍성사), 30. '봄'이 '보다'는 말에서 왔다는 말이 있다. 봄은 참 보기 좋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다는 말씀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그런데 루이스의 말을 들어보니, 봄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저 봄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친히 봄의 '일부'가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내 마음과 몸 자체가 봄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아. 그..
하늘이 뿌연 날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대입을 앞에 두고 모든 것이 치밀하고 긴박하게 움직여 가는 고등학교 학사 일정, 거기서 뭍어나는 내신 경쟁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성적 일등이 아니고선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참으로 굴욕적이고 비참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들의 소중한 아이들이 단지 성적 때문에 자기 자신과 타인의 고귀한 존엄성을 평가 절하하지 않기를 바란다. 첫 모의 고사를 마치고 “엄마, 이 학교에서 진짜 어렵겠어.”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 “괜찮아. 대한민국 교육과정 시간표에 맞출 필요 없어. 하나님의 시간, 성령의 시간에 맞추자. 잘 될 거야.” 순간, 노르위치 줄리안의 “All shall be well.”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흑사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