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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긍휼을 품은 사람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하지만 형제애에서 우러나는 긍휼을 품은 이는 그 슬픔의 원인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랄 것입니다. -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of Hippo: 354-430) 《고백록》, Book III, ii (3) 카르타고(Carthage)에서 유학하던 젊은 시절, 아우구스티누스는 극장에서 비극을 즐겨 보았다. 그것은 그가 비극 관람을 통해 얻는 '카타르시스(catharsis)' 그 자체를 즐겼기 때문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들이 자신은 슬픈 일을 당하기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이들의 불행을 보는 것을 즐기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기 좋아하는 것은 참된 긍휼(misericordia)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참된 긍휼은 불쌍한 사람과 함께 슬퍼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슬픔의 원인이 사라지기..
세리의 고백 (아빌라의 테레사)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자기를 못 믿고 두려워하는 생각이 더 큰 법입니다. 받는 은혜가 크고 보면 자기 자신의 가엾은 모습이 돋보이고, 자기의 지은 죄가 더욱 커 보이는 것, 그러기에 저 세리와 같이(누가복음 18장 13절) 감히 눈을 쳐들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c. 1515-1582), 《영혼의 성(The Interior Castle)》, 일곱 번째 성채, 3장. 14절. 부활절의 노래는 너무나 부르기 쉽고 그날의 축제는 이내 '나'의 것이 되고 말때가 많다. 사순절의 기나긴 어둔 밤은 지루했고 참기 힘들었으며, 남의 것 아니면 저 예수의 것으로 생각해버리고 싶은 유혹은 매해마다 되풀이 된다. 그러나 십자가와 그 길에서 멀어질수록 부활의 기쁨은..
3. 미스타고지(mystagogy): 신비에 눈뜨기 미스타고지(mystagogy): 신비에 눈뜨기 영혼의 눈에 끼었던 / 무명(無明)의 백태가 벗어지며 /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萬有一切)가 /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 이적(異蹟)에나 접하듯 / 새삼 놀라웁고 // 창밖 울타리 한구석 / 새로 피는 개나리꽃도 / 부활의 시범을 보듯 / 사뭇 황홀합니다. // 창창한 우주, 허막(虛莫)의 바다에 / 모래알보다도 작은 내가 / 말씀의 신령한 그 은혜로 / 이렇게 오물거리고 있음을 / 상상도 아니요, 상징도 아닌 / 실상(實相)으로 깨닫습니다. - 구상, .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고 했다.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긴다. 그런데 믿음은 '눈'(目)이다.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주는 눈이..
성경 필사를 통한 영성 훈련 올해 사순절을 시작하며 교회 성도들과 함께 영성 훈련으로서 전교인 성경필사를 시작했습니다. 성경 필사를 하기 전 몇 주에 걸쳐서 설교를 통해 성경 필사의 역사, 필사 할 때의 규율, 그 필사를 통해 전해 내려져 온 하나님의 말씀들을 먼저 나누면서 이것이 단지 '쓰고 모방'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전달하는 사명'이었다는 것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도원을 중심으로 필사를 통해 전해 내려왔던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손을 통해 전해 내려왔지만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거의 오류가 없이 전해 내려올 수 있었나를 함께 생각해 보았답니다. 한 글자라도 정확히 지키고자 했던 그런 엄격함과 정직함이 결국 필사자의 기본 자세라는 것이 성도님들의 입술을 통해 자연스럽게 고백되어졌습니다. "말..
봄 안으로 (C. S. 루이스) 아름다움을 '보는 것만도 대단한 혜택이지만 우리는 그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무언가를 원합니다. 우리가 보는 아름다움과 연합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고, 그것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고, 그 안에 잠기고, 그 일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C. S. 루이스, 《영광의 무게》 (홍종락 옮김, 홍성사), 30. '봄'이 '보다'는 말에서 왔다는 말이 있다. 봄은 참 보기 좋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다는 말씀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그런데 루이스의 말을 들어보니, 봄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저 봄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친히 봄의 '일부'가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내 마음과 몸 자체가 봄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아. 그..
하늘이 뿌연 날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대입을 앞에 두고 모든 것이 치밀하고 긴박하게 움직여 가는 고등학교 학사 일정, 거기서 뭍어나는 내신 경쟁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성적 일등이 아니고선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참으로 굴욕적이고 비참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들의 소중한 아이들이 단지 성적 때문에 자기 자신과 타인의 고귀한 존엄성을 평가 절하하지 않기를 바란다. 첫 모의 고사를 마치고 “엄마, 이 학교에서 진짜 어렵겠어.”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 “괜찮아. 대한민국 교육과정 시간표에 맞출 필요 없어. 하나님의 시간, 성령의 시간에 맞추자. 잘 될 거야.” 순간, 노르위치 줄리안의 “All shall be well.”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흑사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이 봄, 무엇을 기다리나 (우찌무라 간조) 오, 주님이시여, 나의 전적인 무능과 타락을 인정하고, 당신의 생명으로 채움받고자 당신 앞에 나아옵니다. 나는 부정합니다. 나를 정결케 하기를 당신께 기도합니다. 나는 믿음이 없습니다. 내게 믿음을 주옵소서. 당신은 선함 그 자체이시며, 당신이 없으면 나는 어둠일 뿐입니다. 나의 불결함을 보시고 나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시옵소서. 아멘. - 우찌무라 간조, 《우찌무라 간조 회심기》(서울: 홍성사, 2002), 241. 해가 길어지는(Long
분배는 자선이 아니라 정의를 행하는 것 (그레고리우스 1세) 우리가 궁핍한 이들을 보살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줄 때에, 우리가 주는 것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정당하게 속한 것이다. -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540-604), 《목회 규칙(Regula Pastoralis)》, III. 21. 언젠가 사석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어느 분이 "부자들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는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부자들의 것을 빼앗아" 가난 한 이들에게 준다는 표현이었다.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서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것은 정말 "부자들의 소유를 빼앗는" 것일까? 수도자 출신으로서 교황으로 지명된 첫 번째 인물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