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592) 썸네일형 리스트형 1. 목회도 규칙이 필요하다 목회도 규칙이 필요하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 고개를 끄덕였다.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 기형도, 〈우리 동네 목사님〉 일부. 지역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기형도 시인의 〈우리 동네 목사님〉(1984)이라는 시는 한 실존 인물을 배경으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경기도 안양의 한 변두리 동네에 위치한 교회의 목사였다.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을 하여 교인들의 종교적 열광을 만족시키는 ‘뜨거운’ 목사가 아니었다. 대신 그는 학생회 소년들과 텃밭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기도 하고, 읍내 철.. 모든 감각을 다 불러 모아라 (Guerric of Igny) 영원한 말씀이시던 주님께서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모든 감각을 통해 우리 영혼에 들어오시기 위함이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전에는 죽음이 우리에게 들어온 통로가 되었던 우리의 감각들이 생명이 되돌아 오는 길이 되게 하셨다. Guerric of Igny (ca. 1070-1157), Sermon, no. 10창세기의 선악과 대목에서 보듯이(창3:6), 죽음은 우리의 감각을 통해 우리 속으로 들어왔다. 이런 우리에게 다시금 생명을 되찾게 하시려고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요1:14). 창조 이전부터 영원한 말씀이시던 분이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존재가 되신 것이다 (요일1:1). 그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뿐 아니라, 심지어 맛 볼 수 있고 .. 자신에 대한 증오를 벗어버리십시오 (토마스 머튼) 위험한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증오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에 대한 증오입니다. 특히 의식적으로 대하기에는 너무 깊고 너무 강한 우리 자신에 대한 증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잘못을 다른 사람 안에서 보게 하고 우리 자신 안에서는 볼 수 없게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머튼 ,《새 명상의 씨》 최근에 몇 번의 대화를 통해 불편한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의 말투와 방식이 너무 예의 없는 게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많이 참아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니 그 분은 오랫동안 내 눈에 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만의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존재였던 것이죠.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별문제 없었습니다. 그저 "나랑 다르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 있.. 주현절 Epiphany - the blessing of the waters 성수(聖水)에 파리가 빠지면 성수가 더렵혀진다고 생각하는 건불신앙이다. 성수에 파리가 빠지면파리가 성화(聖化)된다. 거룩한 파리가 된다. 그 물에 빠지면모든 것이 거룩해진다. 만물이 성물(聖物)이 되며만인이 성도(聖徒)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느님의 아들이 오셔서요단 강, 죽음의 강 물에 당신의 몸을 담그셨기에이제 세상에 거룩하지 않은 물은 없다. 성수는 도도히 흘러하느님의 집에서는 세례수가 되고 사람의 집에서는세숫물이 된다. 그 물로 깨끗이 씻어환히 빛나는 얼굴. 그 얼굴이 사람의 얼굴이다. 하느님의 얼굴 같은사람의 얼굴. / 이종태 0. ‘영성 고전에서 배우는 영성 목회’ - 연재를 시작하며 '산책길'은 2015년 한 해 동안 기독교 월간지 에 '영성 고전에서 배우는 영성 목회'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의 양해를 얻어 이곳 산책길 팀블로그에서도 2월부터 매달 글을 게재할 예정입니다. 잡지에서는 지면의 제한으로 원고가 축약되어 인쇄되었지만, 이곳에서는 전문을 게재합니다. 아래의 글은 연재를 시작하는 프롤로그입니다. ‘영성 고전에서 배우는 영성 목회’ 연재를 시작하며 영성 목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실 ‘영성 목회’라는 말은 ‘먹는 음식’이라는 말처럼 우스꽝스러운 어구입니다. 원래 ‘음식’이란 먹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 것처럼, ‘목회’는 영성적(spiritual)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영성 목회’라는 말이 종종 사용되는 현상은 먹지 못 할 음식들이 시중에 유통되는.. 힘을 다해 서로 위로합시다 '哀絶陽-남근 자른 일을 슬퍼하다'는 서글픈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에 지은 것으로, 《목민심서》에는 이 시에 얽힌 사연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1803년 바닷가에 사는 가난한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채 사흘이 되지 않았습니다. 관아에서는 사흘박이 아이를 군포에 편입시키고 백성의 전 재산인 소를 빼앗아갔습니다. 악에 받힌 백성은 칼을 시퍼렇게 갈아 방으로 뛰어 들어 스스로 자신의 양근을 잘라버렸습니다. 다산은 “칼을 갈아 방으로 가 피가 자리 가득하니 자식 낳아 곤액 당함 한스러워 그랬다오.”라며 백성의 마음을 시에서 묘사했습니다."자식 낳아 곤액당함 한스러워 그랬다오."라고 울부짖는 바닷가의 한 백성과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시대’ 청춘들의 우울함은 어딘가가 닮아.. 무지, 신비를 여는 문 (아빌라의 테레사) 우리가 아무리 애써보아도 쓸데없는 노릇입니다. …… 이 물[은혜]은 다만 주께서 원하시는 사람에게, 그나마도 흔히 그 사람이 전혀 모르고 있는 때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를 이끄시도록 맡겨드립시다. -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Avila: c. 1515-1582), 《영혼의 성(The Interior Castle)》, 네 번째 성채, 2장. 9절. 2015년 새해, 우리는 계획과 목표를 세워간다. 더 구체적이고 세세한 계획을 세울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기 마련이고, 그래서 우리는 주도적으로 계산하고, 또 준비한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계획은 반대로 하나님의 신비와 은혜의 자리를 막아버릴 수 있다.사실 우리는 모른다. 10년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니 내일 ..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어 (포티키의 디아도코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빛을 비추어 그 속에 있는 보화들을 빛나게 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선한 것과 좋은 것들을 알지도 경험하지도 못할 것이다. - 포티키의 디아도코스 (Diadochos of Photiki, c.400-c.486), The Hundred Chapters, 29. 이 은총의 조명(照明)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온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감각적 세계에 갇혀 그 너머의 것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던 우리들의 시야를 열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온세상의 구원의 빛으로 스스로를 나타내신 날, 오늘 주현절(1월6일)의 아침, 때마침 햇빛도 찬란하고 따사롭다. 맘 속에 차오르는 찬송을 조용히 불러 그분께 찬양을 돌린다. 어둠의 권세에서 인생을 건지신 주 길 잃고 헤매이던 우리의 .. 이전 1 ··· 33 34 35 36 37 38 39 ··· 7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