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592) 썸네일형 리스트형 홀로된 너에게 여자 친구와 헤어 졌다고 금방 다른 여자로 그 자리를 채우지 말 것. 특히, 그 허전함 때문이라면 더욱 더. 연애는 쉬어서는 안 된다 거나, 그냥 한번 만나보자며 은근슬쩍 소개팅 자리로 끌려가지 말 것. 그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인연을 만들어 가지 말 것. 사람 사이의 관계는 까닭 없이 맺고 풀리는 것이 아니기에, 연을 맺을 때는 맺을 만한 이유를 충분히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풀렸을 때도 그 까닭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서, 앞선 관계, 즉 앞선 인연이 네게 전달해 주는 삶의 메시지를 다 들었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어디 남녀관계의 인연만 까닭이 있겠는가?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다 “까닭”이 있다. 특히, 네 존재 자체가 하나의 “까닭”이야. 네가 좀 머리 아파하고 늘 무슨 소린지 모.. 백투더클래식 서문 :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들" 《백 투 더 클래식: 영성 고전으로 오늘을 읽다》, 이 책은 말 그대로 '공동의 열매'이다. 글의 착상 단계부터 원고를 완성하기까지 아홉 명의 필자들이 서로의 글을 읽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주로 '구글 문서(google docs)'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협업이 이루어졌지만, 필요하면 전화 통화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의 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모두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최선의 열매를 맺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으고 서로를 격려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2년 동안은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니라,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지를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함께 글을 썼을 뿐만 아니라 영적 여정을 함께 걸었다. 저자 중 한 분의 표현대로, 우리는 서로를 뜨겁.. 6. 귀고 2세에게 배우는,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영성 목회’ 6. 귀고(Guigo) 2세에게 배우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통한 ‘영성 목회’ 한국교회 안에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는 이제 그리 생경한 단어가 아니다. 라틴어 '렉시오(lectio)'는 ‘모으다’, ‘필요한 것을 선택하다’, ‘눈으로 모아들이다’라는 뜻의 'legere'에서 온 명사형으로, ‘기록된 본문을 눈으로 훑어보아 마음에 모으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렉시오 디비나는 ‘거룩한 말씀을 눈으로 훑어 마음에 모으는 영적훈련’이다. 그러나 아직 많은 교회와 교인들은 렉시오 디비나를 QT(경건시간)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하여 교회 내 대안적 프로그램으로만 이해하고 있으며, 고대 사막의 수도자들에 의해 시작되어 12세기 카르투시오 수도회에서 윤곽을 .. 믿음의 선조를 통한 분별 (요한 카시아누스) 그때 모세가 말했다. "참 분별은 오직 겸손할 때 얻어진다. 겸손의 그 첫 번째 증거는, 되어진 모든 일들이나 생각들이 우리의 (신앙) 선조들의 조사에 맞춰질 때이다. … 자신의 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앙 선조들의 모델에 의해서 사는 사람(수도자)은 결코 속임을 당하지 않는다. - 요한 카시아누스(John Cassian: 360-435), John Cassian: Conferences(New York: Paulist Press, 1985), Conference 2 no.10, p.67. 매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고 따르겠다고 다짐하지만, 실존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는 분별과, 영적 자유를 향한 여정의 순수성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이럴 때 믿음의 선조들이 걸어온 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은 숙.. 백투더클래식 서문 읽기 바라보며 살아가기 신앙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분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chapter 4. A Year in Derby Prison (1650-51)년의 글 중에서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목회자와 구도자들을 찾았던 조지 폭스는 그들과의 많은 대화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안식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논쟁은 그를 더 방황하게 만들고 공허하게 하였다. 그런 과정을 통해 폭스는 다른 무엇, 다른 누구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와 자기 자신 안에서 참된 빛을 발견하고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신앙은 논쟁이나 배움이라기보다는 바라보는 것이다. 탑처럼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이 복음이다 (Lectio _ with Taize) 루가 12:22-3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떼들아, 조금도 무서워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하늘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시기로 하셨다." 하나님의 친 아드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니 분명 믿을 만한 말씀이다. 이 말씀만 믿고 살자. 담대히 살자. 세상은, 악마는 한다. 주님은 고 하신다. 는 것이복음이다. 야고 1:17-27.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심으신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을 구원할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날 내 마음 속에 심겨진 말씀, 그 말씀의 육화(incarnation)가 되는 것이곧 구원이다. 이사 55:6-11. 우리의 주님께 돌아오너라.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리라.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 그리스도교의 가장 완벽한 규칙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그리스도교의 가장 완벽한 규칙, 정확한 정의, 절정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이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을 수는 없다. -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Johannes Chrysostomus). 칼리스토스 웨어(Kallistos Ware, 1934- )의 《정교회의 길》(The Orthodox Way), 엄성옥 옮김(은성, 1999), 60쪽에서 재인용. 칼리스토스 웨어는, 여기에 인용한 크리소스토무스의 말이 삼위일체의 교리가 지닌 실질적인 함의(含意)이며, 이것이 삼위일체의 삶을 산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라고 말한다. 곧, 그리스도인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성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은 이웃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웨어는 다음과 같이.. 이전 1 ··· 28 29 30 31 32 33 34 ··· 7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