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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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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포기 (잔느 귀용) 실제로 자기 포기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나의 뜻을 끊임없이 버리고, 아무리 선해 보여도 나의 모든 자연적인 성향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야 오직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만을 온전히 선택하게 된다. … 과거는 완전히 잊고 미래는 섭리하심에 맡긴 채 현재는 하나님에게 내드려야 한다. - 잔느 귀용(Jeanne Guyon: c. 1648-1717), 《친밀한 기도(A Short Method of Prayer)》, 1부. 5장. 과거의 후회나 상처를 잊기는 쉽지 않고, 미래를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는 것도 불안하다. 현재를 완전히 나의 것으로 삼고 싶은 욕망은 그 어느 것보다 크다. 이것이 나의 자연적 성향인데 잔느 귀용은 이를 포기하라고 말한다. 나의 뜻과 판단이 어느 것보다 중요한 시대를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존..
침묵이신 주님 (C. S. 루이스) ......침묵이신 주님, 저를 엄습하시어, 저를 제가 가진 사상으로부터, 당신에 대해 가진 사상으로부터도 자유케하소서. C.S. Lewis, “The Apologist’s Evening Prayer,” in Poems, ed. Walter Hooper (London: Geoffrey Bles, 1964), p. 129. 하나님은 '뛰어 넘는'(transcend)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을 뛰어 넘으시고, 우리 상상도 훌쩍 뛰어 넘으신다. 인간이 하는 생각과 상상이란 기껏해야 '말'이다. 말을 잃어야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분을 만났다면 말이 많을 수 없다. 대신 '침묵'에 들어간다. '말씀'이라고도 불리는 그 '말을 뛰어넘는' 세계에. / 이종태 '변증가의 저녁기도' C...
당신의 독서와 묵상은 (귀고 2세) 읽고 묵상하는 것은 선인이든 악인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교 철학자들조차 그들의 이성으로 선의 정수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분께 마땅히 바쳐야 할 영광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그들은 볼 수는 있었지만, 그것을 얻어 누릴 수는 없었습니다. - 귀고 2세(Guigo II, ?-1188?), Guigo II: Ladder of Monks and Twelve Meditation,(Collegeville, MN: Cistercian, 1981), 72. 어떤 이는 읽고 … 읽고 … 읽는다.다른 이는 읽고 … 연구하고 … 가르친다.또 어떤 이는 읽고 … 묵상하고 … 묵상한다.또 다른 이는 읽고 … 묵상하고 … 묵상을 가르친다.그 중에 뛰어난 이는 읽고 … 묵..
감각의 죽음과 부활 (발타자르) 우리의 감각들은 우리가 가진 이미지들, 사상들과 함께 반드시 그리스도를 따라 죽어야 하고, 지하 세계에 깊이 묻혀야 한다. 먼저 그 이런 과정을 겪은 후에야 그 감각들은 고양(高揚)되어, 감각적이면서 동시에 초(超)-감각적인,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 The Glory of the Lord: A Theological Aesthetics, vol. I, 245. 우리가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게 될” 그 에스카톤(eschaton, 종말)의 날이 이르기 전에는 우리는 그분을 단지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발타자르가 말하는 감각의 죽음과..
사랑의 긴박한 갈망 (십자가의 요한) 어느 어두운 밤, 사랑의 긴박한 갈망에 불타서 ―아, 그 순전한 은혜여!― 나는 눈에 띄지 않게 밖으로 나갔다. 집안은 이제 모두 잠들었으므로…… 십자가의 요한(John of the Cross: 1541-1591), 《영혼의 어두운 밤》, Selected Writings, ed. Kieran Kavanaugh, (New York: Paulist, 1978). 162. 갈급함에 목말라 밤을 새며 부르짖을 때가 있었다. 밤새껏 부르짖고 나면 '무언가 통쾌하고 내 할 것 다한 것 같고, 이젠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도 무슨 답답한 문제나 어려울 때에 난 여전히 부르짖는다. 그런데 계속 반복해서 부르짖다 보면, 나에게 하나님은 내가 급할 때에만 필요한 분, 다급하지 않으면 부르짖을 필요가 없는 분..
일상은 하늘에 닿아있는 일 (디트리히 본회퍼)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상에서 사랑과 자비의 일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말씀을 기쁘고도 믿을 만하게 선포할 수 있다. -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정지련, 손규태 옮김, 《신도의 공동생활》 (Gemeinsames Leben),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04. 깨닫고 느끼고 새롭게 배우게 된 것이 바로 나 자신인 줄 착각할 때가 많다. 기독교를 전하며 복음을 다른 이에게 소개한다고 해서 그 일이 내가 그 복음 안에서 살고 있다라는 것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기독교 고전의 명문을 소개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교회 강단에서 성경을 풀어 설명하는 목회자들 역시좋은 신학 지식을 갖추고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설교문을 생각해 내는 것을..
끊임없이 즐겁게 질문하기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누가 이것을 이해 못한다고 해도 내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래도 그로 하여금 즐거이'이것이 무엇이냐?'고 계속 묻게 하소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할지라도 즐거움으로 당신을 찾아 만나게 하여주소서. 행여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어놓고 당신을 찾지않을까 두렵습니다. -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of Hippo: 354-430) 《고백록》, Book I, vi (10) 신앙생활은 끊임없이 질문하는 과정입니다. 모든 일과 사건과 피조물속에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우리의 시각과 틀 안에서 왜곡되어 이해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왜 그러시는가?',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됩니다. 세월호 사고도 이스라엘의 가자공습에도 우리는 이..
빛이시기에 사랑이시기에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주님, 당신은 빛이시기에 당신을 알아보도록 그들을 비추시나이다. 주님, 당신은 사랑이시기에 사랑하도록 그들을 불태우시나이다. - “주님의 기도 묵상”, 《아씨시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글》, (서울: 프란치스코 출판사, 2014), 83.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이 “주님의 기도”를 잘 이해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그 의미를 부연 설명하였다. 위에 인용한 것은 프란치스코의 “주님의 기도 묵상” 중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대한 묵상 글 중 일부인데 우리는 묵상 글 역시 그 자체로 기도문인 것을 알 수 있다. 빛이신 주님이 빛을 비춰주시면 우리에게 주님을 아는 지식이 생긴다. 사랑이신 주님이 사랑으로 우리를 불태우시면 우리는 주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게 된다. 주님을 아는 지식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