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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명의 자리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 한 형제가 스케티스에 있는 모세 교부(Abba)를 찾아와 교훈의 한 말씀을 청했다. 그러자 그 원로가 말하기를, "가서 자네의 독방(cell)에 좌정하게나. 그리하면 그 방이 자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줄테니" , ch.2, 9. "홀로 지낼수록 함께 있음"의 신비를 체험코자 사람들은 사막 독방(cell)의 고독을 기꺼이 선택했다. 독방과 고독은 이들의 일상이었고 삶의 중심 축이었다. 하지만 무료함이 밀려왔다. 일상이 더 이상 의미를 던져주지 못하는 일들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단조로운 노동과 독서, 그리고 기도로 채워진 일상에서 "경탄과 경이"는 뜨거운 햇볕에 점점 말라만 들어가고, "권태(아케디아, akedia)"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고독(solitude)" 대신 "고립(isolation)"이 가..
거룩한 갈망 _ 개암 비전 IV (노리치의 줄리안) 하나님보다 작은 것은 그 무엇도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다. all that is less than He is not enough for us.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ca.1342 – ca.1416),《하나님 사랑의 계시 Showings》, LT, ch. 5. 온 세상 만물을 다 가져도 인간의 마음은 차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은 온 우주보다 크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인간 영혼을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았던 어거스틴은 이렇게 고백했다: 님 향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 마음은 님 안에서 쉬기까지는 안식하지 못합니다. 줄리안 역시 같은 고백을 한다: 하나님과..
"빛과 성령을 통하여" (조지 폭스) 주님은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신령한 빛으로 깨우침을 받는다는 것을 열어 보이셨고 나는 그 빛이 나에게 두루 비치고 있음을 알았다 …… 나는 빛과 성령을 통하여 인도하심을 받고 가르치심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빛을 통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어둠에서 빛으로 돌이키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능력을 주실 것'임을 나는 알았다." 조지 폭스 (George Fox 1624-1691), The Journal, Chapter 2, The First Years of Ministry (1648-1649) 중에서 새벽예배에 자주 나오시는 한 성도님께서 제게 꼭 읽어보라며 몇 권의 책을 선물하셨습니다. 《성령의 불세례를 받으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책 속에는 '성령 ..
겨레의 스승 안창호 독립운동가로서의 안창호 선생의 삶과 사상을 다룬 책은 많지만, 기독교인으로서의 그의 면모를 조명하는 글은 별로 없다. 그런데 최근 20세기 초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로서의 안창호를 보여주는 책을 두 권 발견하고서 반가움에 소개한다. 먼저 2012년 2월 규장에서 출간된 《안창호 : 사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규장 신앙 위인 북스' 시리즈의 하나로 도산의 삶을 동화식으로 엮은 전기이다. 다음으로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에서 작년 말《겨레의 스승 안창호》라는 제목으로 그의 작품과 일화를 한글과 영어로 한 권에 묶어 내놓았다. '한국기독교지도자 작품선집' 시리즈의 열두 번 째인 이 책은 기존에 전해지는 도산 안창호와 관련된 많은 자료들 중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그의 면모..
진정한 탁월함 (조나단 에드워즈) 탁월함은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며 탁월함의 정도는 더욱 더 넓어지는 존재의 범위를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탁월함, 다시 말해서 진정한 아름다움이나 진정한 미덕은 일반적인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신)을 인정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아름다움이란 오직 관계안에서 존재한다. 모든 탁월함은 조화, 균형, 그리고 존재 내부의 비율과 같은 관계를 나타내는 범주안에서 존재한다. -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c. 1703-1758) [정신에 관한 기록] 흔히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것을 인간이 모든 존재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존재라고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탁월성은 오직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에서 이해가..
깊은 어두움으로 뛰어드는 잠수부 (마카리우스) 신중한 사람들은 욕망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그것에 복종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화를 내며 등을 돌리고, 자기 스스로를 원수처렴 여긴다. …… 이런 이들은 이를테면 잠수부와 같다. 잠수부들은 왕관을 장식할 진주를 얻기 위해, 혹은 임금의 옷을 자주빛으로 채색할 염료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바다밑까지 헤엄쳐 들어간다. 금욕의 삶을 사는 수도자들은 이런 잠수부들과 같다. 그들은 세상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깊은 어두움 속으로 내려간다.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왕관과 거룩한 교회와 새 세상과 빛의 도성과 천상의 성도들에 어울리는 값진 보석들 모아 온다. - 마카리우스(c.300-390) 『신령한 설교』 (은성), 15. 51. 마카리우스는 이 설교에서, 사람들이 자기 밖의 세상에 대해서는 많은 지..
기쁨의 원천 (노리치의 줄리안)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은 곧, 모든 것들에 깃들어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The fullness of joy is to contemplate God in everything."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ca.1342 – ca.1416),《하나님 사랑의 계시 Showings》, LT, ch. 35. 기쁨이란 말을 쉽사리 동원하기 힘들 정도로 우리가 당면한 오늘은 녹록지 않습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힐링"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것만 보아도 이같은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의롭고 착한 이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악하고 저울을 속이는 자들이 오히려 흥하는 오늘 이 엄동(嚴冬)의 땅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감지하는 일은 우리의 능력을 벗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우..
창조와 사랑 _ 개암 비전 III (노리치의 줄리안) 나는 그것 [창조된 만물 전체]이 존속되고 있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어찌나 작고 미약(微弱)한 것인지 금방이라도 없어져 버리고(sink into nothingness) 말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 ca.1342 – ca.1416),《하나님 사랑의 계시 Showings》, LT, ch. 5. '계시' 가운데 창조된 만물 전체를 일별하게 된 줄리안은 놀랐다. 그 광대한 존재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미소(微小)한 것이 여태도 존재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금방이라도 '무'(nothingness)로 돌아가버릴 것만 같은 그 자그마한 것이 지금도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그 사랑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