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수난은 우리를 강하게 하소서

영성 생활/수필 한 조각 2014. 4. 10. 00:00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 속에서 한숨과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그 자신이 감당하고 있는 고통의 무게감 때문에 다리가 휘청이고 무릎을 땅에 꿇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하게 될까? 특히, 그 고통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데 어쩔 수 없이 꼭 따라 붙는 그림자와 같다면, 나와 당신을 위해 고통을 포기하고 도망치자고 해야 할까? 아니면, 힘내라고, 할 수 있다고, 함께 가자고, 도와 주겠노라고, 나도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포기하지 말자고, 힘을 보태고 격려하게 될까? 아니면, 고통당하는 그를 보는 것이 더 고통스러워 그를 떠나버리게 될까? 《영신수련》 첫 페이지에 실린 오래된 기도문 "Anima Christi"[그리스도의 영혼은]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저를 강하게 하소서" 라고.


그리스도의 영혼은 (Anima Christi)

 

그리스도의 영혼은 저를 거룩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몸은 저를 구하소서.

그리스도의 성혈은 저를 취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흐르는 물은 저를 씻어 주소서.

그리스도의 수난은 저를 강하게하소서.[각주:1]


Diego Velazquez,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1632)의 부분


      평상시에는 주님과의 관계가 그리 특별할 것이 없어서, 제대로 살고 있기나 한 건지 긴가민가 할 때가 많다. 싸움은 없지만 그렇다고 열렬하지도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딱히 뭐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막상 혼자 쓸쓸히 기도하고 계시는 주님을 떠올려 보면, 그리고 제자들이 떠나간 깜깜한 밤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시다 마침내 십자가 길을 처참히 걸으시는 주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믿음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주님을 혼자 내버려 둘 수 없고, 주님 곁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고, 주님께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 싶은 강한 갈망과 용기가 솟아 오른다. 


     "저는 다른 제자들처럼 주님을 떠날 수가 없었어요. 저라도, 저만이라도 그 곁에 머물러 드리고 싶었어요. 저는 겁도 많고 두려움도 많아요. 그런데 그런 거 상관없어요. 저는 주님을 못 떠나요. 안 떠나요."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던 한 벗의 고백을 들었을때, "Anima Christi"의 "그리스도의 수난은 저를 강하게 하소서(저에게 힘을 주소서)"가 배경 음악처럼 들려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지독한 사랑이 우리 안에 깊이 잠들어 있는 또 하나의 사랑을 강하게 깨워내는 것이리라.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땅을 따뜻한 봄볕이 부드럽게 녹여내고 새순을 틔워내는 것처럼.


다음 주면 고난주일이다. "그리스도의 영혼은(Anima Christi)"을 벗 삼아, 주님의 수난머물러 봐야겠다. 특히, 수난의 현장에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적 삶이 구체적으로 발견되길 청하면서, 이렇게 기도하고 싶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우리를 강하게 하소서!"


/ 해'맑은우리 주선영


  1. 작자 미상, "그리스도의 영혼은" 중에서, 로욜라의 이냐시오 지음, 정한채 옮김 ,《영신수련》, 1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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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비, 그리고 사순절

영성 생활/시 한 송이 2014. 3. 31. 11:39

꽃, 비, 그리고 사순절



누구하나 눈길 주지 않는 외로움

아무도 손 내밀어 덜어주지 않는 아픔이 있다.

그럼에도 길가의 풀들이 꽃망울을 머금었다.


온 밤을 가슴 졸이며

한 줌의 소망조차 흩어지는 암울함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되는 이른 새벽 절박함

그럼에도 해쓱해진 얼굴을 들고 묵묵히 걸어갈 길이 있다.

피워 올려야 하는 꽃이 있다.

숨(Ruach)을 들이키며 내뱉는 

살아있는 사람(Adam)의 마땅한 길과 꽃이 있다.  


남 모르게 견뎌온 지난 겨울

길가의 풀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천상(Heaven)에서 떨어지는 봄 소낙비가 박수치며 기뻐하고 있다.


/임택동



Image form www.caml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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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봄

영성 생활/시 한 송이 2013. 4. 6. 12:07

부활, 봄



봄꽃이

물을 먹고 자란다고 말하는 자는

이단이다


봄꽃은

피를 빨아먹고

저리 피어난다


도대체,

겨울 다음에 봄이 온 적이 있었던가?


봄은

겨울 너머에서 오는

다.섯.번.째 계절


겨울이 죽인 자의 피를 먹고

겨울을 죽인 자의 피를 마시고


봄은

겨울을 삼키고 온다


만져 보라

천지에 배어있는 검붉은 피

봄의 성흔(聖痕)을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 이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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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성 안나의 집

영성 생활/시 한 송이 2012. 12. 23. 03:22
  • 집으로 가는 길, 그 분 품으로 가는길에 고독, 바람, 나무, 그리고 하늘까지 길동무가 되어주는 군요. 트랙터 조차 막을 수 없는 기쁨의 길.......

    BlogIcon 오래된 오늘 2012.12.24 14:33 신고
  • 저 헛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웬지 눈 앞에 하늘이 펼쳐질 듯.

    토마스 머튼.
    그도
    너무 눈이 부셔 눈을 감았겠죠?

    하늘 장관에
    어질어질해져
    바닥에 쓰러졌겠죠?

    트랙터 소리에
    겨우 정신이 들었겠구만.

    "여기서 나가!"
    하는 그 죽비소리가 고마웠을 터.

    BlogIcon 산처럼 2012.12.25 05:01 신고
  • 성 안나의 집의 실재 모습이 낯선 만큼 그리고 평안함의 자리로 다가오지 못하는 만큼
    제 삶은 고독에서 멀기만 한 것은 아닐런지요.

    토마스 머튼은 진정한 자신이 되는 자리가 고독임을 발견했건만,
    나는 오늘 하나님과 혼자 있기를 조심스레 거절하며 살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BlogIcon 작은소리찾기 2012.12.26 17:14 신고

집으로 가는 : 안나의 

(A Way to Home: Saint Anns)

 


1.

들판을 가로질러

낮은 숲으로 향하는

호젓한 시골길

 

발밑에서 돌멩이 형제들이

자글자글

나무 위에서 참새 자매들이

쫑알쫑알

한낮의 뜨거운 땡볕에

삭발한 정수리가 익어가도

길옆의 들꽃도 덩달아

설레는 , 즐거운

 

낮은 담장 옆으로 마차의 행렬이 지나가고

대문 앞에서 엄마가 손짓하고

나도 모르게 어린 아이가 되어

아장아장 서섹스(Sussex) 걷는

어제를 걷는

 


2.

세상과 갈라진 샛길

마침내 발견한

외딴 판잣집

평생 찾아온 그곳

페인트로 흰색의 튜닉과

검은색의 스카풀라를 입히고

붉은 색의 십자가를 다니

대리석이 빛나는 대저택보다

호화스런 침묵이 찬연한

 


3.

태초부터 속해 있던

고독

나를 반기고

 

헛간 구석까지 가득 채운

바람

열망을 태워 하늘을 내달리고

 

묵묵히 주위를 둘러싼

나무

함께 교회를 이루고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하늘

통해 세상 모든 나라 하나가 되는 사막

 


4.

낮의 짧은

낭만 속에 안주하게 될까봐

고독을 소유하려 할까봐

 

과묵한 트랙터 수사가

굉음으로 떠밀어

다시 여행에 오르는

집으로 가는



2012. 9. 1.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은 하나님과 고독에 대한 열망으로 겟세마니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에도 더 깊은 고독을 찾아 공동생활을 하는 트라피스트 수도회가 아닌 은둔생활을 하는 다른 수도회로 옮기고 싶어했다. 이러한 그를 위해 수도원장은 그가 겟세마니 수도원 안에서 은둔자(hermit)으로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1953년 머튼은 숲속에 버려진 헛간에서 하루의 낮 동안 몇 시간을 머물러 있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이것은 머튼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그는 그곳을 '성 안나의 집'(St. Ann's)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트라피스트 수도자의 옷과 같은 검은색과 흰색의 페인트로 칠했다. 그는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성 안나의 은수처는 내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고 내 일생 동안 바라던 것이었던 것 같다 …… 나는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삶의 자리를 찾은 느낌이 어떤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 안에 있는 서섹스(Sussex)를 온통 걸어 다녔던 어린아이를 생각한다. 나는 이 오두막집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또는 언젠가 그것을 찾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하늘 아래 하나이다."


"나는 이 집을 알지 못했던 11년 전부터 이 은자의 집으로 옷 입혀졌다. 이 희고 검은 집은 실제로 일종의 확장된 수도복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여행할 필요가 없다 …… 성 안나의 집의 조용한 경치는 다른 어떤 세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나를 허락하기만 한다면 나는 계속해서 여기에 머무르고 싶다."


이곳에서 그의 가장 유명한 기도인 "나의 주님 나는 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릅니다"가 쓰여졌다. 그러나 머튼은 성 안나의 집에서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수도원 경내의 각종 공사를 위해 동원된 트랙터의 굉음이 그의 고독을 방해했다. 그는 1965년 수도원 내의 에큐메니컬 대화 위해 마련된 장소를 새로운 은수처로 사용하도록 허락받는다.  


성 안나의 집과 관련된 이야기와 위의 인용문은 《고요한 등불: 토마스 머튼의 이야기》윌리엄 셰논 지음, 오방식 옮김 (서울: 은성, 2008), 304-309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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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어버린 커피

영성 생활/시 한 송이 2012. 11. 18. 08:33
  • 제목은 "식어버린 커피"인데, 시를 읽으니 마치 뜨거운 커피를 마신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BlogIcon 바람연필 2012.11.18 08:59 신고


어제 저녁 마시다 만 커피

아침 책상머리에서

식다 못해 싸늘해진 놈을 한 모금 삼켰다.

싸하면서도 고소함에 흠칫 입이 놀랐다.


아직 맛이 살아있는 놈을 다시보게 된다.

 

지난 여름

빼곡하여 하늘까지 가렸던

나뭇잎들의 추락이 아침부터 하염없다.

햇빛 가득 어제 하늘이

오늘은 싸늘한 겨울비로 잿빛 충만이다.

 

한때 뜨거웠다가도 식어버리고,

얼어 붙었다가도 다시 타오르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커피는 뜨거울 때에만

맛이 있는 줄 알았다.

온기와 열정을 담고 있어야만 

제대로된 인생인 줄 알았다.

 

인생의 맛은

뜨거울 때라야만 논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냉랭한 커피잔을 비운다.

 

이른 시간부터 잎을 떨구는 저 나무는

겨울비로 몸을 맑혀

더 단단한 나이테를 제 몸에 채우겠지.



/ 오래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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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영성 생활/시 한 송이 2012. 10. 27. 02:22



바다를 보니

마음이 풀어졌다


신기하다


사람은 

바다도 보고

산도 보고

꽃도 보고

소도 보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된다.



/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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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t

영성 생활/시 한 송이 2012. 10. 27. 02:11



내가 앉자

세상이 앉았다

차-악


세상이 앉자

해가 솟았다

불-끈


/ 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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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

영성 생활/시 한 송이 2012. 9. 24. 16:00


바람도 찾아오지 않는데

까치만 애타게 울어댄다


자동차가 휑 지나가고

빈 길 위에 

아침 햇살이 쪼그리고 앉았다


밤 사이 비어 버린

배가 고프다고 보채서

그대를 찾아 나선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고

빈 흔들의자 위에

그대가 묵상에 잠겨 있다



/ 바람연필





"오늘 오후, 나는 낮은 초록색 나무 울타리를 보고 깊은 침묵에 귀 기울이며 만족했다. 그 울타리는 우리를 우주의 나머지 부분으로부터 분리시켜준다. 내가 만족한 이유는 경치나 침묵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 The Sign of Jonas, (San Diego: Harcourt, 1981),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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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핀다

영성 생활/시 한 송이 2012. 9. 12. 08:15


메마름, 고갈

죽음 그림자 흘러 내리는

사막에도

꽃이 핀다.

 

타는 햇살,

살갗 에는 모래 바람,

눈길 하나 없는 지독한 고독,

온 몸으로 삼켜내며

꽃이 핀다.

 

사막의 주인이 누구였던가?

 

더이상

바람에 이리저리  

사방 뒤덮은 모래일 수 없다.

 

꽃이 주인이다.

 


/  오래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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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하임 제단화>와 <성 안토니의 생애>

영성 생활/예술과 영성 2012. 7. 9. 14:33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hias Grünewald의 <이젠하임 제단화>에는 4세기 이집트 사막의 교부 성 안토니우스 (St. Anthony 또는 Antonius of Egypt)가 등장한다. 이처럼 서양미술에서는 기독교 고전 작품 또는 성서의 이야기를 소재로 활용하여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그림과 고전 작품에 대한 이해와 묵상을 돕기 위하여 제단화의 일부와 더글라스 버튼-크리스티 교수의 글을 일부 번역해서 싣는다. 






 "Isenheimer Altar" by Matthias Grünewald

These files are from the Wikimedia Common and http://www.aiwaz.net.





 

DOUGLAS BURTON-CHRISTIE 지음, 권혁일 옮김, "Athanasius(c.295-373): The Life of Anthony, " in Christian Spirituality: The Classics, Arthur Holder 편집 (New York: Routledge, 2010), 13-14.



인물은 수척하며 죽은 듯하다. 그의 몸무게로 인해 못이 박힌 그의 손과 발이 찢어지고, 그의 육체는 꺾쇠로 보이는 것에 갈가리 찢어졌으며, 그의 머리는 마치 몸에 붙어 있지 않은 늘어져 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hias Grünewald 15세기 작품 이젠하임의 제단화Isenheim Altarpiece 서양 미술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가장 강렬하고 충격적인 그리스도의 이미지들 중의 하나를 담고 있다. 그것은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이미지이다. 이것은 제단화에서 중심이 되는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 옆판에 보이는 매우 흉측한 인물은 육체가 썩어 들어가는 염증으로 뒤덮였고, 복부는 팽창했으며, 사지는 몸에서 모두 함께 떨어져나갈 것처럼 보인다. 그는 안토니의 이라고 알려진 무서우면서도 때론 치명적인 세균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데, 병은 오백 동안 유럽을 황폐하게 만들어왔다. 다른 인물은 이집트의 안토니St. Antony이다. 그는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확실히 낫게 하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졌던 성인이다. 그는 다수의 섬뜩하고도 악마적인 존재들에 의해 구타당하고, 할큄을 당하며, 찢겨지면서 자신의 고통을 견디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뤼네발트의 제단화에서 인물들, 그리스도, 안토니, 안토니의 의한 익명의 희생자의 융화는 너무나도 강력하게 인간의 고통을 형상화 해낸다. 인물들을 응시한다면, 어떤 이는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이 실제로 가능할까라는 불확실성의 느낌을 피할 없을 것이다. 고통은 너무 극심하고, 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무언가가 또는 누군가가 고통을 완전히 극복할 있었겠는가? 하지만 사실은 제단화는 희망의 상징이다. 심지어 안토니의 희생자와 같이 바로 절망의 가장자리 위에서 사는 이들에게라 할지라도 구속과 치유는 가능하다는 신호이다. 제단화는 처음에 질병으로 인한 희생자들이 치료를 받던 병원 시설의 일부로 창작되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희생자들의 병원생활을 특징짓던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그리스도도 안토니도 초연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오히려 그들은 고통을 함께 하고 심지어 거기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여질 필요가 있었다. 이제하임 제단화에서 다수의 섬뜩한 생물들에 의해 시달리고, 가리가리 찢기는 것으로 묘사된 안토니는 [공격에] 노출되고 취약하며 무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인물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그리스도처럼, 그리고 안토니의 희생자와 마찬가지로 성자는 의심과 극심한 고통의 끔찍한 장소를 깊숙이 여행한 것으로 보일 있었다. 안토니는 이와 같이 고통 가운데 있는 외로운 영혼들을 만날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아마도 그는 영혼들 또한 자신들의 고통 한가운데서 그리고 고통을 넘어서 하나님의 현존을 발견할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그들 속에 불붙일 있었다.

           안토니에 대한 중세 유럽의 다른 묘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젠하임 제단화에 묘사된 성인의 이미지는 4세기의 명작, 《안토니의 생애The Life of Antony》에서 영감을 받았다. 작품이 처음 출현한 때부터, 이집트 사막에서 하나님을 추구하고 악마들과 싸우던 은둔 수사의 이야기는 기독교 상상력 속에 깊이 공명되었다. 이와 같은 공명은 작품이 출현한 이후 오랫동안 계속되었는데, 무수한 적용과 해석을 통해서 시대는 이야기에 신선한 의미를 주려고 노력했다.


posted by 바람연필